-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무장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로 생년월일은 알 수 없다. 동학 농민 혁명 당시손화중포의 접주로서 보은집회와 3월 봉기 및 9월 봉기에 참여하였다. 우금치 전투 때 전사하였다. 강경중의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언제 동학에 입교(入敎)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고창 출신의 관리, 교육자, 사회사업가. 본관은 진주(晋州)이다. 1878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송면에서 태어났다. 강대식은 1903년 경기전참봉(慶基殿參奉)을 지냈으며, 1905년에는 6품 승훈랑(承訓郞), 정3품 비서감(秘書監)으로 승차하였다. 한일합방 후 지금의 고창군 성송면 암치리로 물러난 뒤 재산을 일구어 소작인을 1,057명이나 거느릴 정도의 대...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이름은 창주(昶柱)이다. 순택(舜澤)은 자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고제량(高濟良)이다. 고순택은 일찍이 고창의 대표적인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이며 접주였던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무장, 고창 일대에서 송문수(宋文洙)·최경칠(崔敬七)·문덕중(文德仲)과 함...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장흥(長興)이며, 본명은 제중(濟中)이다. 영숙(永叔)은 자이다. 1867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 교동에서 태어났다. 고영숙이 동학에 언제 입교(入敎)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892년 8월에 일어난 선운사 마애불비기 탈취사건(禪雲寺磨崖佛秘記奪取事件) 때 강경중(姜敬重)·오지영(吳知泳)과 함께...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장흥(長興)이다.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용교리 교동에서 태어났다. 고태국이 정확하게 언제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무장과 흥덕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다고 알려져 있다. 고태국은 동학 농민 혁명 당시 무장, 흥덕 지역의 부농들로부터 전곡을 다수 빼앗...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국훈엽은 191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흥덕리에서 태어났다. 1952년 5월 10일 실시된 제1대 도의회 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차점으로 낙선하였다. 이후 1956년 8월 13일에 실시된 제2대 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고창군 제2선거구에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제2대 도의원의 임기는 1956년 9월 5일부터 1960년...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가. 본관은 청도(淸道)이며, 자는 자범(子範), 별호(別號)는 병운(丙雲)이다. 1843년 무장현 하이면 고산[현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장산리 장암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이진(金以珍)이다. 김규일은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뒤 손화중(孫華仲) 포에 소속되어 동생 김천일(金千一)과 함께 활동하였다. 1894년 3월 20일 무장 1차...
-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독립운동가이자 정치가. 본관은 울산(蔚山)이다. 1919년 10월 27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서 인촌(仁村) 김성수(金性洙)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김상흠은 연희전문학교에 재학 중이던 1939년 12월 같은 학교 학생인 서영원(徐泳源)·김재황(金在璜)·김영하(金永河)·이동원(李東元)·민영로(閔泳魯) 등과 함께 서울 사직동에 있는...
-
일제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교육가·언론인·정치가·기업가.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호는 인촌(仁村)이다. 1891년 10월 1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서 호남의 거부였던 김경중(金暻中)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후 3세에 큰아버지인 김기중(金祺中)의 양자가 되었으며, 13세에 고광석(高光錫)과 혼인하였다. 김성수는 1906년 전라남도 창평에서 송진우(宋鎭禹)...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운재(雲齋), 본명은 용수(容秀)이다. 수병(琇炳)은 자로, 또 다른 자는 수복(秀福)이다. 김해김씨 삼현파의 20세손으로, 아버지는 김봉환(金鳳煥)이다. 186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서 태어났다. 김수병은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세며 의지가 굳어 주변 젊은이들의 우두머리였다고 전한다....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김수학은 1896년 5월 21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의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호남은행 목포지부장, 상공부 차관, 대한무진금융주식회사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52년 고창군 갑구[고창면, 고수면, 무장면, 공음면, 상하면, 성송면, 대산면]에서 무소속으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당...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사익(士益)이다. 184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창강(金昌强)이다. 김양두는 1886년 무과에 입격하여 선전관을 지내는 등, 학식과 용모가 출중했다고 전한다. 과거에 합격한 양반 출신이지만 봉건 정부에 대한 저항 의식으로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동학 농민 혁명 당시...
-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기업가. 본관은 울산(蔚山)이며, 아명은 판흥(判興), 호는 수당(秀堂)이다. 1896년 10월 1일 전라북도 고부군 부안면 인촌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경중(金暻中)이며 어머니는 장흥고씨(長興高氏)이다. 김성수(金性洙)가 형인데, 큰아버지 김기중(金祺中)의 양자로 들어갔다. 김연수는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기...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영심(永心)이다. 영달(永達)은 초명으로 호적에 오른 이름이다. 족보에는 달병(達炳)으로 되어 있다. 185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강남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 때 진주성 대전에서 순절하여 선무원종공신 2등으로 녹훈된 김지남(金志南)의 10세손이다. 김영달은 어린 시절 원촌 사는 김흥섭(金興燮)...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본관은 광산(光山), 190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김영동은 1921년 정읍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3년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29년부터 북간도, 연길, 용정, 연해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2년 후 출옥하였다. 만주 봉천에서 제철제강업과 자동차연료제작소 사업을 하였으며, 그 운영 이익금은 가...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가. 김재명(金在明)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에서 태어났다. 영학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1899년 4월 28일 흥덕 주재 광주지방대 사령관에게 이첩되었다. 형량은 밝혀져 있지 않다. 영학당 사건은 동학농민혁명 후 1898년(고종 35) 12월 흥덕에서 일어나 이듬해 6월까지 흥덕, 고창, 고부, 무장 지방에 번졌던 농민 항쟁을 말한다....
-
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김종흡은 일본의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종교철학과를 졸업한 후 전주 신흥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며 교무주임을 맡았다. 그는 영어를 가르치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 명작을 읽어 주기도 했는데, 좀처럼 화를 내지 않아 학생들의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1934년 9월 고창고등보통학교 교장으로 부임하여 재직하였고, 해방 후에는 서울대학교 부총장을...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군. 김준옥의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고 전한다.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했다가 살아남은 동학 교도들이 비밀리에 조직한 것이 영학당(英學黨)이었다. 이들은 결사 조직으로 탐학한 관리들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는데, 그것이 바로 1899년 4월에 일어난 정읍 농민 봉기이...
-
조선 후기 고창 출신의 거짓 고변 희생자. 1733년(영조 9) 11월 4일 포도대장 신광하(申光夏)가 괘서사건에 대해 상소하였다. 신광하가 말하기를, “창원 사람 김계보(金繼寶)가 금년 8월 16일에 창평 땅에 갔는데, 태인 사람 홍구채(洪九采), 정읍 사람 김명신(金命信)·서정구(徐鼎九), 흥덕 사람 김팔기(金八起)·정제인(鄭齊仁), 부안 사람 김남역(金南繹) 등이 고만령(高萬...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영암(榮庵), 본명은 흥관(興寬)이다. 187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신촌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김성칠(金聲七)이다. 김흥섭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김성칠과 함께 동학에 입교(入敎)해 활동하였다. 김성칠은 1893년 12월, 전봉준(全琫準)·손화중(孫化仲)·정백현(鄭白賢) 등과 함께 송문수(宋文洙...
-
일제 강점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했던 일본인 종교가이자 교육자. 마스도미 야스자에몬[枡富安左衛門]은 마스도미 야스자이몽, 또는 승부 장로(枡富長老)라 불리기도 한다. 1880년 일본 후쿠오카에서 4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마스도미 야스자에몬의 아버지는 고향에서 간장공장을 경영하고 있었다. 어린 시절 두 형과 동생을 잃은 마스도미 야스자에몬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공장을 경영하려고...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군. 본관은 남평(南平)이다. 185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에서 태어났다. 문덕중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무장의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송문수(宋文洙), 고순택(高舜澤)과 함께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하여 1894년 3월 20일 무장 기포와 백산 봉기에 관여하였다. 9월의 2차 동학 농민 혁명...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박성렬은 1916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무장리에서 태어났다. 면장 출신으로 1952년 5월 10일에 치러진 제1대 도의회 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된 뒤, 1952년 5월 20일부터 1956년 8월 15일까지 도의원을 역임하였다. 1956년 8월 13일에 실시된 제2대 도의회 의원 선거에 현역 의원으로 고창군 제3선거구에...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배상기는 1922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에서 태어났다. 1952년 대한청년단[약칭 한청] 소속으로 제1대 도의원에 선출되어 활동하였다. 이후 1956년에 실시된 제2대 도의회 의원 선거에서는 자유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고창군 제1선거구에서 도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56년 9월 5일에서 1960년 8월 13일까지 재임하였다....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는 상삼(相三), 호는 남계(南溪)이다. 1864년 무장현 와공면 청천[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용수리]에서 배후근(裵厚根)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배환정은 한약방을 경영했는데, 집안 형편이 어려운 환자에게는 약을 무료로 주고 노부모를 모시는 환자에게는 약값을 반액만 받았다. 이러한 활동으로 주변...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달성(達城)이다. 189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산림리 은동에서 태어났다. 서상옥이 동학 농민 혁명 당시 정확하게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한 무리의 농민군을 이끌던 괴수로 평민을 침탈하고 재곡(財穀)을 빼앗기가 부지기수”였다는 관변 측 기록으로 미루어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다. 서...
-
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이름은 성준(聖準), 호는 하은(河隱)이다. 1860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삼산동에서 태어났다. 손화중(孫華仲)의 족질(族姪)이다. 손여옥은 손화중 포의 일원으로 주로 정읍과 고창에서 활동하였다. 1893년 11월 전봉준(全琫準)과 함께 사발통문(沙鉢通文)에 서명한 20명 가운데 한 사람으로 초기 동...
-
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대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이름은 정식(正植), 자는 화중(華仲)[또는 和中·化中), 호는 초산(楚山)이다. 1861년 정읍현 남일면 과교리[현 전라북도 정읍시 과교동]에서 아버지 손호열(孫浩烈)과 어머니 평강채씨(平康蔡氏)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185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에서 아버지 송의호(宋義浩)와 어머니 전주이씨(全州李氏)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송경찬은 1893년 동학 교단에서 신원 운동의 하나로 전개한 보은 집회를 전개할 당시부터 무장 접주로 활약하였다. 1894년 3월 봉기 때 강경중(姜敬重)과 함께 1,300여 명의 동학 농민군...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마을[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동생 송경수(宋景洙)와 함께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하였다. 송문수는 대표적인 무장 지역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군 지도자였다. 1894년 3월 봉기 때 최경칠(崔敬七) 등과 함께 무장에서 봉기했고, 이후 9월 봉기 때...
-
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가. 송민수(宋敏洙)는 지금의 고창군 흥덕면 하남리에서 살았으며, 북면 훈임(訓任)으로 신망을 받았다. 이화삼의 제의를 받고 1898년 12월 영학당 흥덕농민봉기를 주도하였다. 12월 27일 밤 이화삼과 함께 당시 북면 중남당리·외남당리·하남당리, 동면 산양리·관정리·생근리 등 5~6개 마을 농민 300여 명을 거느리고 일어나 28일 흥덕...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신용남은 1917년경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에서 태어났다. 일본 주오대학[中央大學]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대한항공사 사장을 역임하였다. 1967년 6월 8일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고창 지역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가 부정 시비에 휘말렸으나, 곧바로 치러진 재선거에서 다시 당선되었다. 1971년 5월 25일 치러진 제8...
-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비행사·기업가·정치가. 본관은 거창(居昌)이다. 1901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사천리 내사마을에서 태어났다. 신용욱은 1922년 일본 오쿠리비행학교[小栗飛行學校]를 졸업하고 1등 조종사 면허를 받았다. 이후 토아항공전문학교를 거쳐 미국 실라헬리콥터학교 조종과를 졸업하고 미국 헬리콥터 조종사 허가증을 받았다. 귀국 후 비행기학교를 창립하여...
-
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신정옥은 고창 접주로 칭해졌던 인물로, 일찍이 동학에 입교하여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활동하였다. 그의 행적에 대하여 자세한 사항은 알 수 없으나, 다만 9월 재봉기 이후의 행적만 확인되고 있다. 장성 유생의 기록에 의하면 10월 중순 이후 장성으로 내려와 개천과 단망 등지에 진을 쳤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또한 10...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안기남(安基南)[1914~?]은 지금의 고창군 대산면 매산리에서 태어났다. 면장을 지냈으며, 1952년 5월 10일 치러진 제1대 도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소속으로 고창 지역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고창마을금고 이사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군. 본명은 항영(恒永)인데, 공삼(公三)이라고도 불렸다. 1860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엄흥삼은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 동학 농민 혁명에 참여했다가 살아남은 동학 교도들이 비밀리에 조직한 것이 영학당(英學黨)이었다. 이들은 결사 조직으로 탐학한 관리들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는데, 그것이 바로 1899년 4...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오시영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에서 태어났다. 『동학사』를 쓴 오지영이 동생이다. 1893년 보은 집회 때 고창 접주로 활약하였다. 오시영은 어려서 고창읍 고촌으로 이주했는데,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운사 마애불비기 탈취사건(禪雲寺磨崖佛秘記奪取事件) 때 전봉준(全琫準)과 손화중(孫...
-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교육가이자 사회사업가. 본관은 함양(咸陽)이며, 자는 경안(敬安), 호는 남사(南沙)이다. 1895년 1월 1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 남산리 흥룡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오병문(吳秉文)[1858~1915]으로 부호였다. 오자환(吳滋煥)은 다른 아이들이 한문 서당에 다니고 있을 때 신학문을 배웠다. 성장한 뒤 그는 식민지 치하에서 가장 시급한...
-
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고흥(高興)이며, 원래 이름은 연도(然道), 이명(異名)은 용수(容洙)이다. 공선(公先)은 자로, 성오(星五)는 또 다른 자이다. 1863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군 내장면 금붕리에서 태어났다. 손화중(孫華仲)의 처남이다. 유공선은 손화중과 함께 지리산 청학동에 들어갔다가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 손화중과 함께 1894년...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1918년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성두리 상성마을 93번지[상성길 33-18]에서 유제필(柳濟弼)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동생은 유우상(柳祐相)으로,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월곡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유용상은 명륜전문학교를 졸업하고 유학연구소 연구생으로 있던 중 비밀 독서회인 대동사(大同社)를 결성하였다. 1943년에는 동양문화연구소의 연구생이...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유진의 본관은 고흥(高興)이다. 고창고등보통학교와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였다. 일본 교토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학부에서 공부를 했다. 동방평론사 편집부장·조선독립협찬회 부위원장·정읍농림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미소공동위원회 1급 통역관, 서울대학교 교수로도 활동하였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공천을 받고 고창...
-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관리·궁사·풍류 명인. 은성익은 1892년에 전라북도 고창군에서 태어났다. 일제 강점기에는 항일 독립운동을 하는 지하 조직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관선·민선으로 고창읍장을 지낸 명사로 문예에도 출중하였고, 명궁사로도 널리 알려졌으며, 가야금과 양금(洋琴)·장구·피리에 능한 풍류[정악(正樂) 가운데 악기의 합주를 일컬음] 명인이었다고 한다. 1956년...
-
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대성(大成)이다. 1858년 지금의 전라남도 영광군 묘량면 영당리 소골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윤록이다. 이문교는 어려서 아버지를 따라 무장현 청해면 안산리[현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안산리]로 이사했다가 다시 왕거마을로 옮겨 살았다. 이후 이문교는 외가 사람들의 권유로 동학에 입교(入敎)하였...
-
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에서 활동한 정치가. 이병옥은 1927년 지금의 전라북도 부안군 부안읍 서외리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와 단국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중령으로 예편한 뒤 1960년 제5대 민의원 선거에 출마하여 낙선했으나, 5·16군사쿠데타 후 치러진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부안군 지역의 민주공화당 후보로 나와 당선되었다. 이후 7대·제8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본관은 함평(咸平)이며, 자는 봉춘(逢春), 휘는 병서(秉緖), 호는 송암(松巖)이다. 1905년 11월 19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해리면 안산리 634번지[나성로 550-11]에서 이유석(李儒碩)의 6녀 1남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 이봉춘은 1945년 광복을 맞아 조선건국준비위원회에 가담하여 건국촉진대 고창지대장을 맡아 활동하였다. 1...
-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사회주의 운동가. 본관은 전주(全州)이다. 1913년 1월 23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 칠성동 29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애국지사 이휴열(李休烈)이다. 이재남은 고창고등보통학교에 재학 중이던 1926년 6월 10일 독립 만세 운동 시위에 참가하였다. 이후 고창고등보통학교 결사 조직인 독서회에 가입하여 학생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
-
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흥덕 농민 봉기 지도자. 이화삼은 젊은 시절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에 살면서, 농업 기술을 전수하고 농민 계몽 등을 위해 만들어진 계모임과 같은 상호 부조적인 농민 조직 영학당을 이끌고 있었다. 1898년 이화삼은 이웃 마을 송관오의 장례식에 갔다가 여러 사람으로부터 흥덕군수의 탐학에 군민의 원성이 높은 것을 알고, 이웃 외남당리 송민수(宋敏秀)...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군. 이화서는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흥덕면 후포리에서 태어났다. 1898년 12월 이화삼(李化三)이 중심이 되어 일으켰던 흥덕 농민 봉기가 실패한 후, 이듬해 1899년 4월 최익서(崔益瑞)가 중심이 되어 정읍에서 재차 봉기가 일어났는데, 이것을 영학당 사건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정읍의 입암면 왕심리에서 ‘벌외벌양(伐外伐洋)’을 표방하고 고부관아를 습...
-
일제 강점기 고창 출신의 교육자.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녹현(祿賢), 호는 근우(槿愚)이다. 1889년 8월 4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 칠성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이병종(李秉鐘)이다. 이휴열은 1914년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기 위해 백낙윤(白樂允)·이순열(李舜烈)·이석렬(李錫烈)·황상익(黄尙翼)·백관수(白寬洙)·이갑수(李甲洙)·황서구(黄瑞九) 등과 함...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조양(兆陽)이며, 초명은 문수(文洙), 본명은 종문(鍾文)이다. 천서(天瑞)는 자이다. 186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수면 인성리 석우촌에서 아버지 임석황(林錫璜)과 어머니 울산김씨(蔚山金氏)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임천서는 동학 농민 운동의 준비 단계부터 전봉준(全琫準)과 각별한 관계를 맺고 일을 계획했다고 한다....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조양(兆陽)이다. 생몰 연도와 정확한 탄생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지만 같이 활동한 임천서(林天瑞)의 행적으로 미루어 1895년 동학 농민 혁명이 마무리되는 해에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임형로는 일찍이 동학에 입교(入敎)한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농민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고창 접주로 활동했고, 무장에서 활...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군. 전막동은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사점(沙店)에서 태어났다. 생년월일은 알 수 없는데, 이는 아마도 후손이 없이 죽었기 때문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거나 신분이 낮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1899년에 일어난 정읍 농민 봉기에 참가하여 4월 23일 고창군 부안면 중흥리의 알뫼 장터 싸움에서 체포된 뒤, 같은 날 27일 고창옥에서 죽었다....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천안(天安)이며, 자는 명숙(明淑), 호는 해몽(海夢)이다. 몸이 왜소하여 흔히 녹두(綠豆)라 불렸는데, 이 때문에 뒷날 녹두장군(綠豆將軍)이란 별명이 생겼다. 출생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1855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에서 태어난 것으로 보인다. 전봉준은 어려서 전주 구미리[현 전라북도 완주...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휘는 근영(根永), 호는 진암(眞庵)이다. 백현(伯賢)은 자이다. 186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예전리에서 태어났다. 정백현은 농민 봉기 와중에 잡히지 않은 몇 안 되는 지도자급 인사 가운데 한 명이었다. 정백현은 1894년 3월에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 때, 전봉준(全琫準)의 처 칠촌으로 뒷날 전주대...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정세환은 1915년 12월 16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대산면 연동리 160번지[장동길 33-11]에서 태어났다. 일본 니혼대학[日本大學] 정치과를 졸업하고, 고창중학교 재단 이사장과 대산금융조합장·중산수리조합장·재단법인 정치학원 이사·국민회 전북도지부장을 지냈다.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고창 갑구에서 당선되었으며, 4대 국회...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군. 본관은 직산(稷山)이다.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리 수월마을에서 태어났다. 조재용은 월암리에 사는 임벽하(林碧河)의 천거로 정읍에 사는 접주 최익서(崔益瑞)를 통해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 1899년 4월 정읍 농민 봉기에 가담했다가 고창 수성군에 체포된 뒤 5월 2일 고창옥에서 죽었다....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접주이자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조판용의 생년월일은 알 수 없으나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덕정리 제내마을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일찍이 1899년 정읍 농민 봉기[일명 영학당 사건]를 주도한 최익서(崔益瑞)에게 천거되어 동학에 입교(入敎)하였다. 동학 접주로서 동학 농민 혁명이 좌절되자 동학의 재건을 추진하던 중 1899년 4월에 일어난 정읍 농민...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본관은 여양(驪陽)이며, 호는 백민(白民)이다. 1921년 12월 13일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에서 태어났다. 진의종은 경기고등학교를 수료하고 경성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43년 7월 고등문관 시험 행정과에 합격하였고, 1945년에 일본 북해도청 농무과장을 지냈다. 1971년 고창군에서 신민당 후보로 나와 제8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뒤, 1...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호는 월포(月浦), 본명은 귀환(貴煥)이다. 경칠(敬七)은 자이다. 1861년 무장현 동음치면 당산마을[현 전라북도 고창군 공음면 구암리]에서 태어났다. 최경칠은 9척 장신으로 풍채가 좋았다고 하는데, 동학 농민 혁명이 일어나기 전에는 머슴의 등에 업혀서 서당에 다닐 정도로 집안에서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이었다고 한...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최서중의 생몰 연대는 알 수 없다. 이는 아마도 그의 후손이 남아 있지 않아서일 것으로 추정된다. 출신지 역시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손화중(孫華仲) 포의 일원으로 무장에서 활동하였다는 사실에서 고창 출신으로 추정되고 있다. 최서중은 손화중 포의 기포장(起包將)으로 활동하면서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농민군을 규합하는 데 힘썼다. 그의...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법조인. 최용관은 1913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용산리에서 태어나, 고창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47년부터 법관으로 활동하며 광주지방법원과 광주고등법원 판사를 거쳐 광주지방법원 순천지원장으로 재직하였다. 1968년부터 광주지방법원 목포지원장으로 재직하였다. 1971년 5월 25일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목포지구 선관위원장으로 임명된 최용관은...
-
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정읍 농민 봉기 지도자. 본관은 초계(草溪)이며, 이름은 석일(錫一)·운일(雲一)·일서(一西), 자는 익서(益瑞)이다. 1858년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시 임암면 만화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최영두(崔永斗)[1829~1899]도 동학 농민 혁명에 앞장섰다. 최익서는 고부 마항리(馬項里)[현 정읍시 이평면]에서 예수교를 빙자하여 영학당을 조직한 뒤 고부·장...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가. 최치홍(崔致洪)은 지금의 고창군 부안면 중흥리에서 태어났다. 영학당 사건으로 체포되어 1899년(고종 36) 4월 28일 흥덕 주재 광주지방대 사령관에게 이첩되었다. 영학당 사건은 동학 농민 혁명 후 1898년(고종 35) 12월 흥덕에서 일어나 이듬해 6월까지 흥덕, 고창, 고부, 무장 지방에 번졌던 농민 항쟁을 말한다. 1898년 12월...
-
전라북도 고창군 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1940년 6월 10일 전라북도 옥구군 옥구면 상평리 458번지에서 한영순의 1남 2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한상신은 1958년 3월 20일 군산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5월 20일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의 상하초등학교에 첫 발령을 받아 근무했다. 1964년 9월 1일 고창군 성내면에 있는 용교초등학교로 전근하여 근무했다. 그 해 1...
-
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동학 농민 혁명 당시 천민 부대를 이끈 홍낙관(洪樂寬)의 동생이다. 홍계관은 1894년 3월 봉기 때 형 홍낙관과 함께 행동하였다. 당시 손화중(孫化仲) 포의 일원으로 고창에서 농민 혁명에 가담해 대성(大成) 수접주(首接主)로서 무장·백산·황룡촌·전주성 등의 전투에 참가하였다. 1896년 8월에는 최익서...
-
개항기 고창 지역에서 활동한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홍낙관은 본관이 남양(南陽)이며, 1850년에 태어났다는 것을 제외하고 출신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평소 호탕한 성격에 귀티가 흐르는 미남형이었다고 전한다. 지금의 고창읍 화산리에 사는 남양홍씨 집성촌을 찾아가 홍종운(洪鍾雲)[1844~1925]을 만나 후 동학 접주 유동근(劉東根)·유치호(劉致鎬) 등의 천거로 동학에...
-
전라북도 고창군 출신의 정치가.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913년 8월 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87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홍종철(洪鍾轍)이다. 홍순희는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를 졸업하고 고창산업조합 상무이사·고창면협의회 의원·고창군학교평의회·고창동중학교 이사·고창산업조합장·전북인사처장서리·민주당 중앙위원 등을 지냈다. 1958년 5월 2일 실시된...
-
일제 강점기와 현대 고창 출신의 기업가, 사회 활동가. 본관은 남양(南陽)이다. 1893년 4월 25일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아산면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홍재삼(洪在森)이고, 어머니는 진대기(陳大基)이다. 홍종철은 일제 강점기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아 1937년 당시 370여 정보의 땅을 소유한 고창의 거부였다. 정읍국자(井邑麯子) 이사·고창요업주식회사 대표·고창흥산 이사·대흥...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농민 혁명 지도자. 본관은 평해(平海)이며, 초명은 학모(學模), 호는 죽곡(竹谷)이다. 1854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성내면 신성리에서 태어났다. 황채오는 1893년 11월 전봉준(全琫準)과 농민 봉기를 계획하고, 송두호(宋斗浩)의 집에서 동지 20명과 사발통문(沙鉢通文)을 발기하고 서명하였다. 사발통문의 내용은 첫째, 고부성을 격파하고 군수 조병갑(...
-
개항기 고창 출신의 동학 혁명군. 본관은 창원(昌原)이다. 1869년 지금의 전라북도 고창군 상하면 석남리에서 태어났다. 황화성의 선대는 주변 10리 안팎의 땅을 소유한 지주였다고 한다. 황화성은 어려서부터 골격이 크고 장대했다고 전한다. 일찍이 집안 형님뻘 되는 황희성(黃熹性)과 같이 공음면 구내 출신 송문수(宋文洙) 휘하의 동학 농민군으로 들어갔다. 1894년 3월 20일 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