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C0302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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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 내촌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선희 |
김제시에서 내촌으로 바로 다니는 버스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루 세 편 있는 버스를 타지 못하면 인근에 있는 신흥마을까지 가야 김제 시내로 오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쉬이 오갈 수 없는 김제 시내를 다니는 것은 동네 사람들 누구에게나 큰일이었지만, 특이 집안일과 시집살이로 고달픈 삶을 살아야 했던 할머니들의 젊은 시절에 김제를 나가는 것은 ‘거사(巨事)’, 곧 큰일이었다.
[며느리들끼리 모여서 세상 시름을 덜다]
차가 없어 면소재지인 죽산이고 김제 시내고 간에 걸어 다닐 수밖에 없었던 그때, 마을에는 ‘갑내계’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해 마을에 정착한 동갑 새댁들이 만든 계모임이었다.
13명의 새댁들이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졌는데, 밥을 하기도 하고, 떡을 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실력 발휘를 해서 유사를 치르곤 했다. 소요 경비는 쌀 다섯 되 정도였다. 젖먹이 아이들을 등에 업고 모여앉아 고단한 얘기도 하고, 시어머니 흉도 봤다. 그때는 시어머니들도 며느리들 숨통을 열어 주려고 자리를 피해 주곤 했다.
한 번은 한 집에서 시어머니가 워낙 깐깐해 도저히 집안에서 밥을 해먹을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다 같이 김제 가서 밥을 먹자는 것이었다. 김제 가는 게 원(願)이었던 새댁들이지만, 넉넉지 않은 형편에 밥 한 끼 사먹을 여유가 없었다. 결국 계원들은 밥값과 김제까지 가는 경비를 모으기로 했다. 유사를 담당한 집에서 쌀 한 말을 내고, 나머지 사람들이 쌀 한 말을 모아서 총 쌀 두 말 값을 마련하고 김제 시내로 향했다.
[김제 가는 길이 제일 좋았어]
일찌감치 모정으로 집합한 새댁들은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길 수 없어 등에 하나씩 들쳐 업고 나서야 했다.
13명의 아낙들이 나란히 서서 1㎞ 정도 떨어진 갯다리로 버스를 타러 걸어갔다. 차도 다니지 않는 길이니 아이를 들쳐 업고 나란히 서서 가는 시골 새댁들의 뒷모습을 상상해 보라!
겨우 도착한 갯다리에서 버스를 세우고 올라타는데, 버스 안내양의 볼멘소리가 이어졌다.
“어라? 하나가 둘씩 타네, 열세 명이 아니고 스물여섯이여!”
그래도 김제 가는 길이니, 누가 무슨 소리를 한들 들렸을까? 김제 시내에 도착해서도 13명의 내촌댁들은 거침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시장 골목골목을 지날 때마다 주변에서 들리는 “끝도 없네, 끝도 없어!”라는 소리에 서로 웃으며 오히려 즐거움은 배가 되었다고 한다.
옛이야기를 해주신 김분순[1933년생] 할머니는 이젠 차를 가지고 있는 집도 많고, 버스도 정기적으로 다니기 때문에 걸어 다니는 불편함도 없고, 그전처럼 우르르 몰려다니는 일도 없지만 고된 시집살이를 함께 풀어내기 위해 김제를 다니던 그때가 참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