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B0301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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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진 희 |
힘이 센 오라비와 누이의 내기를 소재로 하는 ‘오누이 힘내기 설화’는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야기는 구술자에 따라 변형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대체로 어머니의 부당한 개입으로 아들이 시합에서 이기는 것이 전형적인 형태이다. 간혹은 말과 화살 중 어느 것이 빠른지 속도 내기를 벌인 이후, 말이 늦은 줄 알고 죽였다가 뒤늦게 화살이 도착하여 장수가 후회하게 된다는 치마대 이야기가 결합되기도 하는데, 동곡마을에서 전해들은 정여립 오누이 이야기에는 이러한 이야기 재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 전기 사람인 정여립[1546~1589]은 “천하는 일정한 주인이 따로 없다”는 천하공물설(天下公物說)과 “누구라도 임금으로 섬길 수 있다”는 하사비군론(何事非君論) 등 왕권 체제하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혁신적인 사상을 품은 사상가이다.
이이와 성혼의 문하에 있으면서 서인(西人)에 속하였으나, 이이가 죽은 뒤 동인(東人)에 가담하여 이이를 비롯하여 서인의 영수인 박순·성혼을 비판하였고, 이로 인해 왕의 미움을 사게 되어 관직에서 물러나 낙향하게 된다. 이 부분이 바로 전해지는 이야기의 역사적 배경이 되고 있다.
정여립 오누이 이야기는 마을 어귀에서 콩을 타작하고 있었던 강인숙[가명] 씨와 온수집 가게 앞에서 만난 동심원 옆에 거주하신다는 김병권 할아버지, 그리고 마을회관에서 뵌 김현식[1919년생] 할아버지께서 들려준 내용을 모아 구성했다. 약간씩 상이한 부분들은 연로한데도 불구하고 “세네 살 적 이야기도 기억하시는 분이야. 총기가 아주 대단해.”라고 마을 주민들이 말하는 김현식 할아버지의 기억에 기대어 엮었다.
이야기의 진위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동곡마을을 공간적 배경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것과 여전히 주민들 사이에 구전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정여립의 존재감을 일깨우게 한다. 그리고 역사적 실존 인물과 관련되어 구성된 설화라는 점에서 일반적인 구전설화 이상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누이의 힘겨루기]
정여립은 낙향한 이후 매일같이 마을 청년들을 모아 군사 훈련을 하며 보내게 된다.
주로 나무 사이에 줄을 매어 줄타기를 하거나 무술을 연마했는데 이를 지켜보던 누이는 “시절이 어수선하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라고 하면서 극구 말리고, 이 때문에 두 사람은 마음이 맞지 않게 된다. 오누이는 급기야 내기에 지는 이의 목을 베기로 하는 위험한 경합을 벌이게 되는데, 정여립은 제비산 전체에 이엉을 엮어 지붕을 모두 올리기로 하고, 누이는 누에고치 실을 뽑아 옷을 백 벌 만들기로 한다.
하지만 내기가 시작된 후 옆에서 지켜보던 어머니는 아들이 지게 될 것 같자 “그래도 우리 집안에 아들이 저이 하나뿐인데 죽으면 되겠느냐?” 하면서 딸을 달랬다고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사실을 모른 채 돌아온 정여립은 누이가 옷고름을 달지 않고 남겨 둔 것을 보고 내기에 졌다며 누이의 목을 베었다고 한다.
한편, 승부욕이 남달랐던 정여립은 자신이 타고 다니는 말의 속도에 자신이 있었는데, 화살을 쏘아 말과 화살 중 어떤 것이 빠를까 하는 엉뚱한 내기를 했다. 그리고 말이 화살보다 늦었다고 말의 목을 치게 되는데, 나중에 보니 화살이 뒤늦게 날아와 말의 엉덩이에 박히는 것을 보고 크게 후회했다고 한다. 용암리에는 지금도 정여립의 말이 묻혀 있다는 무덤이 있는데, 그 무덤을 없애면 농사가 잘 안 된다고 여겨져서 주민들은 그곳을 보존하고 있다고 전한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