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703 |
---|---|
한자 | 趙連壁-碧骨龍 |
영어의미역 | General Jo Yeonbyuk and Dragon of Byeokgol |
이칭/별칭 | 「쌍용추와 벽골룡」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윤애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에서 김제조씨 시조인 조연벽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조연벽과 벽골룡」은 벽골제와 관련된 많은 설화 중 특별히 김제조씨 시조인 조연벽(趙連璧)에 대한 씨족시조전설이다. 또한 벽골제 수호신인 벽골룡의 부탁을 받고 벽골제를 빼앗으러 온 변산의 청룡을 활로 쏘아 쫓아 주었다는 괴물퇴치담이다. 이를 「쌍용추(雙龍湫)와 벽골룡」이라고도 일컫는다.
전라북도 김제읍 용두동[지금의 김제시 옥산동]에서 태어난 조연벽은 무예가 뛰어나 장수의 재목으로 꼽혔다. 군인으로 벼슬길에 나선 그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것은 1231년(고종 18) 몽고의 살리타이가 침략했을 때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부장(副將) 김윤후(金允侯)와 함께 처인성(處仁城)[지금의 경기도 용인시]에서 몽고군을 소탕하고 살례탑(撒禮塔)을 사살하여 무적 몽고군에 패전의 치욕을 안기면서 고려 무사의 기개를 만천하에 떨쳤다. 이 공으로 조연벽은 상장군이 되고 벽성군(碧城君)에 봉해졌다.
조연벽에게는 조기(趙岐), 조서(趙瑞), 조간(趙簡) 세 아들이 있었는데, 모두 학문이 뛰어났고 높은 벼슬[우의정]까지 올랐다. 특히 셋째 아들 간은 등에 북두칠성 모양의 용 비늘이 일곱 점이나 박혔고, 양 어깨에 용 비늘로 만들어진 갑옷이 달려 있어 보는 사람들마다 벽골룡의 정기를 타고 났다고 칭송했다고 한다.
[채록/수집상황]
김제 지역의 향토학자 정진형이 채록한 이야기이다. 그 내용은 전라북도 문화관광정보[http://www.gojb.net]의 전통문화 항목에 실려 있는데, 이는 김제시 문화관광과에서 제공한 정보이다.
[내용]
조연벽은 기골이 장대하고 겁이 없는 소년이었다. 무술을 좋아하여 눈만 뜨면 말타기, 칼싸움, 활쏘기에 시간을 보냈으니 김제 고을에서는 조연벽을 당할 자가 없다고 소문이 났다. 조연벽은 어찌나 활을 잘 쏘았는지 화살로 나뭇잎을 뚫기도 했고 날아가는 기러기를 쏘아 떨어뜨릴 정도였다. 무술 수업을 하던 어느 날 피곤하여 잠깐 잠이 든 사이 꿈에 하얀 수염이 발끝까지 내려온 할아버지가 나타나 조연벽을 깨웠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벽골제를 지키는 벽골룡이라고 하면서 조연벽의 도움을 받으러 왔다고 하였다. 사연인 즉 부안 변산에 사는 청룡이 벽골제를 뺏으러 온다고 하니 도와달라는 것이었다. 조연벽은 벽골제에 사는 벽골룡이라는 말에 귀가 번쩍 뚫려 무엇을 도와줄 것인가 말하게 하였다. 할아버지는 내일 자기가 청룡과 싸울 때 화살로 청룡을 맞추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조연벽은 꿈에서 깨어나 활과 화살을 들고 벽골제로 달려갔다. 그런데 벽골제에는 아무린 징조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가하게 물오리 떼들만 노닐고 있었다. 벽골룡인 자기가 청룡과 싸울 때 청룡을 화살로 맞추기만 하면 된다고 하는 꿈 속 할아버지의 말을 되뇌면서 막연하게 있을 때였다. 갑자기 먹구름이 일어나고 비바람이 몰아치더니 천둥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는 중에 먹구름 속에서 청룡이 혀를 내밀고 불을 토하며 벽골제를 향하여 달려오고 있는 것이었다.
조연벽은 간밤의 꿈에 만났던 할아버지의 말을 생각하면서 활과 화살을 들고 벽골제를 향하여 달려갔다. 벽골제에는 또 물결이 일어나면서 백룡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것이었다. 용맹무쌍한 조연벽이지만 자꾸 다리가 떨렸다. 벽골제 하늘에서는 청룡과 백룡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계속되고 있었다. 조연벽은 경황이 없는 중에도 ‘청룡을 쏘아야 한다.’고 했던 간밤 꿈에 만났던 할아버지 벽골룡의 말을 생각했다. 하지만 청룡을 겨냥해서 활을 쏘아 맞추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았다. 공중에서는 청룡과 백룡이 서로 뒤엉켜서 치열하게 싸움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청룡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두 용의 싸움은 아주 치열해서 반나절이나 계속되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백룡이 청룡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조연벽은 활을 잡은 손에 힘을 주고 청룡을 맞출 때를 기다렸다가 마침내 백룡이 청룡에게 밀려서 도망치고 있는 순간 청룡의 배를 향하여 힘껏 활을 쏘았다. 배에 화살을 맞은 청룡은 순간 어디론가 도망쳐 달아나 버렸다. 잠시 후 먹구름 속에서 무엇이 반짝이면서 조연벽의 발 아래로 떨어졌다. 60㎝도 넘는 용 비늘이었다. 조연벽은 힘들게 청룡을 물리친 후, 손에 용 비늘 한 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 밤, 조연벽의 꿈에 다시 벽골제 벽골룡이 나타났다. 벽골룡은 조연벽의 도움으로 영원히 벽골제에 살게 되었다고 칭송하면서 자기를 살려준 보답으로 조연벽이 자손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살게 될 것을 알려 주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조연벽은 무과에 급제하였다. 조연벽은 나라의 변방을 지키던 중, 1232년 몽고군의 침략 때 대장군으로 임명되어 몽고군과 싸워 큰 공을 세웠다. 그리고 조연벽은 뛰어난 무술과 지략으로 처인성에서 몽고군과 싸워 적장 살례탑을 죽이고 몽고군을 섬멸시켰다. 전쟁이 끝난 후 조정에서는 조연벽의 공을 높이 인정하여 ‘녹익조공봉벽성군(錄翊祚功封碧城君)’이라는 칭호를 내렸다. 조연벽의 세 아들도 후에 큰 벼슬을 하였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조연벽과 벽골룡」의 주요 모티프는 ‘백룡과 청룡의 싸움에서 괴물 퇴치’, ‘벽골룡의 도움으로 무과 급제’, ‘몽고군을 섬멸하는 공을 세움’ 등이다. 이 시조설화는 지금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는 김제조씨의 시조인 조연벽을 그린 영웅담이다. 조연벽의 도움으로 청룡을 쫓아낸 벽골제 수호신 벽골룡은 다시 꿈에 나타나서, “장군의 도움으로 영원히 벽골제에 살 수 있게 되었으니 그 보답으로 자손들이 융성을 누릴 수 있도록 하겠노라.”며 약속을 하고 실천을 한 보은형 전설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그의 아들 3형제가 모두 뛰어나 가문의 번영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