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5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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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雷默 |
영어음역 | Noemuk |
이칭/별칭 | 처영(處英) |
분야 | 종교/불교,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금산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수환 |
[정의]
조선 후기 김제에서 활동한 의승장(義僧將).
[가계]
법명은 처영(處英)이고, 호가 뇌묵(雷默)이다.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제자이다.
[활동사항]
뇌묵은 금산사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피난을 가자, 휴정은 팔도의 승려들에게 격문을 보내어 의승(義僧)으로 궐기할 것을 호소하였다. 이에 뇌묵은 김제 금산사를 중심으로 1천여 명의 승병을 모집하여 권율(權慄)과 함께 금산의 배고개 전투[일명 이치전투(梨峙戰鬪)]에서 큰 공을 세웠다.
또한 1593년 2월에는 권율과 함께 북진하여 왜적을 물리쳤으며, 권율이 행주산성에 주둔할 때는 7백여 명의 승병을 이끌고 한 면을 담당하여 적병 3만과 대적하여 2만 4천 명의 사상자를 내게 함으로써 임진왜란 이후 최대의 승첩을 거두었다. 뇌묵은 행주대첩의 공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이란 직함을 받았다. 1594년에는 도원수가 된 권율의 명으로 의령(宜寧)에서 군사를 이끌고 남원의 교룡산성(蛟龍山城)을 수축하였다.
[상훈과 추모]
1794년(정조 18) 왕명으로 휴정·유정(惟政)·뇌묵의 진영(眞影)을 해남 대흥사(大興寺)의 표충사(表忠祠)와 묘향산 수충사(酬忠祠)에 봉안하고, 관에서 춘추로 제관과 제수를 보내어 향사하게 하였다. 또한 뇌묵의 공덕을 치하하여 ‘방가주석선문목탁동시임란공존사직일체거의보제군생 의병부장 가선대부중추부사 뇌묵당대선사(邦家柱石 禪門木鐸 同時臨亂 功存社稷 一體擧義 普濟群生 義兵副將 嘉善大夫中樞府事 雷默堂大禪師)’라는 찬호를 하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