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3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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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安徵 |
영어음역 | An Jing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채수환 |
성격 | 의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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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신지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 |
성별 | 남 |
생년 | 1558년 |
본관 | 순흥(順興) |
[정의]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의병.
[개설]
금산의 웅치전투는 관군과 의병이 호남을 지키기 위해 혈투를 전개한 싸움이다. 왜군이 충청도 영동의 황간 순양을 거쳐 1592년 6월 22일(음) 제원 천내강의 저곡나루로 금산성을 공격하여 오자 금산군수 권종이 저곡산성을 의지하여 왜군과 전투를 벌였으나 전사하였다.
6월 23일 금산성이 함락되고 이곳을 근거지로 하여 6월 말 용담과 진안을 거쳐 전주로 공격해 가는 과정에서 7월 8일 진안에서 전주로 가는 길목인 웅치[곰티재] 일대에서 의병장 황박, 나주판관 이복남, 김제군수 정담 등이 이끄는 관군과 의병이 호남을 지키기 위해 혈투를 벌였다. 웅치전투에서 호남 수비군의 사투로 왜군 전력이 크게 약화되어 호남 방어의 결정적 계기를 만들었다. 웅치전투의 현장은 웅치를 경계로 한 지금의 진안군과 완주군 일대에 걸쳐 있다.
[가계]
본관은 순흥(順興). 자는 중훈(中勳), 호는 반매당(伴梅堂)이다. 아들은 안충남(安忠男)이다.
[활동사항]
안징(安徵)[1558~?]은 지금의 김제시 백산면 하정리에서 태어났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백의창의(白衣倡義)로 의병을 모집하여 김제군수 정담(鄭湛)과 더불어 웅치전투에 참여하여 적병을 물리쳤으나 야음을 틈탄 적의 기습으로 전사하였다. 안징은 웅치전투에 출전하려 할 때 베에 성명을 적어 허리띠 속에 넣음으로써 필사의 각오를 하였다. 아들 안충남이 이로써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