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8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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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善男 |
영어음역 | Baek Seonnam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수환 |
[정의]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수여(秀汝). 고조할아버지는 첨사(僉使) 백장(白璋)이며, 아버지는 선전관청선전관(宣傳官廳宣傳官)을 역임한 백광호(白光浩)이다.
[활동사항]
백선남(白善男)[?~1636]은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의 패륜함을 목도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다가 인조 때 창원부사에 임명되어 청백리(淸白吏)로 칭송받았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왕이 남한산성으로 피신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남한산성에 이르는 길목인 광주까지 달려갔지만 적병이 이미 교통을 차단한 상태였다. 이에 쌍령치에서 부장 권박(權璞), 김제 출신 윤여임(尹汝任), 병사 민영(閔泳), 허완(許浣), 충청병사 이의배(李義培) 등과 더불어 종일토록 적과 전투를 벌여 많은 전과를 올렸으나 야간을 이용한 적의 기습으로 윤여임과 함께 전사하였다.
[상훈과 추모]
병조참판에 증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