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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0833
한자 朴忠吉
영어음역 Bak Chunggil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채수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무신
출신지 전라북도 김제시
성별
본관 함양(咸陽)
대표관직 부장

[정의]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가계]

본관은 함양(咸陽). 토헌(土軒) 박초(朴礎)의 후손이다.

[활동사항]

박충길(朴忠吉)은 부장(部將)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피난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둘째 아들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백관들은 권정례(權停例)로써 진하(陳賀)하였다. 왕은 사관에게 명하여 종묘와 사직의 주판(主版)을 받들고 먼저 떠나게 하고 왕은 융복(戎服)으로 고쳐 입고, 세자 및 왕세자 신성군(信城君) 이후(李珝), 정원군(定遠君) 이부(李琈) 그리고 왕비 등과 함께 도성을 떠났다.

일행은 서울에서 개성까지 3일이 걸렸으나, 출성 당시 100여 명이 호종하던 것이 3일 사이에 상당히 줄어들어 개성까지 따라온 인원만으로 관원을 재구성할 수밖에 없어 관직의 변동도 많았다. 개성에 머무르고 있던 선조 일행은 도성이 적에게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평양으로 옮겼으며, 임진강 방어마저 실패하여 개성이 함락되고 적군이 계속 북침한다는 소식을 접하자 평양 수비마저 포기하고 의주로 옮겼다. 박충길선조가 피난길에 오르자 위험을 무릅쓰고 왕을 호종하여 용만[평안북도 의주시의 옛 별호]에 이르렀다.

[상훈과 추모]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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