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79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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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仲佑 |
영어음역 | Na Jungu |
이칭/별칭 | 낙천와(樂天窩)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42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창섭 |
[정의]
고려 후기 문신이자 나주나씨 김제 입향조.
[가계]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낙천와(樂天窩). 할아버지는 나송기(羅松奇)이고, 아버지는 금양군(錦陽君) 나석(羅碩)이다.
[활동사항]
1362년(공민왕 11) 병과(丙科)에 16번째로 급제하였다. 전교시령겸춘추관편수관(典校寺令兼春秋館編修官)을 거쳐 예문관지제고(藝文館知製誥)에 이르렀다. 신돈 집권 후 공민왕이 정몽주(鄭夢周)·이숭인(李崇仁) 등과 함께 경서에 밝다 하여 교관(敎官)으로 삼았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벼슬을 버리고 김제 입천면 내호리[지금의 김제시 신풍동 내기마을]로 내려와 우거하였다. 이성계가 세 번이나 우의정을 제수하고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으며, 자손들에게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는 법이 아니라고 이르고, 자신은 고려의 지제고이니 신주(神主)에도 그렇게 쓰라고 명하였다.
[묘소]
묘소는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42번지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