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731 |
---|---|
한자 | 礪山宋氏集姓村 |
영어의미역 | Yeosan Song Cla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 |
집필자 | 김승대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에 있는 여산 송씨 집성촌.
[개설]
여산송씨(礪山宋氏) 시조 송유익(宋惟翊)은 고려 때 진사(進士)로서 공을 세워 여산군(礪山君)에 봉해지고, 은청광록대부(銀靑光錄大夫)로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에 추증되었다. 이로부터 여산을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송유익의 선계(先系)는 중국 경조(京兆) 출신으로 당나라 호부상서(戶部尙書)를 역임한 송주은(宋柱殷)의 후손 송자영(宋自英)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원종 때 4세손인 송송례(宋松禮)가 왕실을 위협하던 권신 임연(林衍) 일파를 제거하는 공을 세워 추성익대보리동덕좌명공신(推誠翼戴輔理同德佐命功臣)에 책록되고 벽상삼한삼중대광광정대부문하시중판전리사사상장군(壁上三韓三重大匡匡靖大夫門下侍中判典理司事上將軍)에 올랐다. 더불어 여양부원군(礪良府院君)에 봉해지고 식읍 1천 호를 받았다. 이로써 여산송씨 가문의 기틀이 다져졌으며, 후손들은 송송례를 중시조로 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금구면 입향조 송윤(宋倫)[1407~1468]은 문과에 급제하여 계공랑광흥창승을 지낼 때 세조가 왕위를 찬탈하자 아들 송극창(宋克昌)[1431~1476]과 함께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 낙성리 사방마을에 은거하면서 정착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송윤의 아들 송극창은 문과에 급제하여 예빈시부정(禮賓寺副正)을 지냈고 예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송극창의 자손들은 주로 전주시 삼천동·여의동 일대, 또 다른 일족은 광주시 매동 일대와 무안군·장흥군 일대에 살고 있으며, 송득창(宋得昌)의 손자들은 이웃 금구면 청운리 불로마을에 터를 잡아 후손들이 대대로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백산면 입향조 송복(宋復)의 9세손 송일중(宋日中)[1632~1717]은 초서·예서·대자에 뛰어나 숙종과 청나라 강희제(康熙帝) 의 찬탄을 받았다. 19세손 송기면(宋其冕)은 호남 지방의 큰선비로 이름이 높았고, 그의 아들 강암(剛庵) 송성용(宋成鏞)[1913~1999]은 서예가로서 시·서·화에서 높은 경지에 올라 이름을 떨쳤다.
[현황]
김제의 여산송씨는 송윤 후손의 불로파[일명 석성공파]와 송복 후손의 여꾸다리파로 나뉜다. 현재 불로파는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불로마을 일대에 집성촌을 이루고 있으며, 불로리 송씨·낙송(洛宋)이라고도 불린다. 여꾸다리파는 청하면과 백산면 일대에 세거하고 있다.
관련 유적으로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불로마을에 죽계 송정기(宋廷耆)·백재 송정구(宋廷耈)·송정 송정모(宋廷模) 삼형제를 배향한 낙양사(洛陽祠)가 있고, 금구면 낙성리 하사마을에 송윤 유허비(宋倫 遺墟碑)와 절부 문화유씨 정려가 있으며, 백산면 상리 자학동에 송기면을 배향한 병암서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