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7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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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堤趙氏集姓村 |
영어의미역 | Gimje Jo Clan Village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 |
집필자 | 김승대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김제 조씨 집성촌.
[형성 및 변천]
김제조씨(金堤趙氏)는 조연벽(趙連璧)을 시조로 하는 김제시 세거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조연벽은 1232년(고종 19)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왕명으로 대장이 되어 처인성(處仁城)에서 적을 섬멸한 공으로 벽성군(碧城君)에 봉해졌는데, 벽성이 김제로 이름이 바뀌자 후손들이 관향을 김제로 하여 김제에 세거하면서 번창하기 시작했다.
조연벽의 아들 문량공 조간(趙簡)은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다. 조간의 11세손 조필달(趙必達)[1600~1664]은 무과에 급제하여 1630년(인조 8) 충좌위우부장(忠佐衛右部將)에 제수된 뒤 순안현령·보성군수·양주목사·포도대장·전라병마절도사·삼도수군통제사 등 72개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조필달은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국사를 공정히 처리하고 재물을 탐내지 않는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으며, 이를 알게 된 왕이 그의 청렴함을 시험하기도 하였다. 효종 때에는 송시열(宋時烈)·유손 등과 함께 북벌 계획에 참여하였다.
벽하(碧下) 조주승(趙周昇)은 철종 때 서예와 문장·묵화로 이름을 떨쳤고, 흥선대원군이 그의 난과 대나무 그림을 보고 창란벽죽(倉蘭碧竹)이라 칭송하기도 하였다. 금강산(金剛山) 유점사의 현판, 속리산 법주사의 ‘호서제일가람’의 현판 등을 남겼고, 서울대학교박물관에도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현황]
김제시 교동을 비롯하여 김제시 옥산동·명덕동·복죽동에 집성촌이 있다. 관련 유적으로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4호로 지정된 조필달 장군 유물(趙必達將軍遺物)이 있다. 조필달 장군 유물 6종 17점 가운데 1점[전동대]은 후손 조주태가 소유·관리하고 있으며, 나머지는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과 동진수리민속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이 밖에 김제시 입석동에 김제조씨 시조묘, 복죽동 죽절에 숭모사, 효자 조용창 정려(孝子趙用昌旌閭), 충신 조영립 정려(忠臣趙英立旌閭), 독산동 옥거리에 조간 유허비(趙簡遺墟碑), 효자 조항진 정려(孝子趙亢晋旌閭) 등이 있다. 교동 성산 중턱에 있는 용암서원(龍巖書院)에는 조간·이계맹(李継孟)·나안세(羅安世)·윤추(尹推)가 배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