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6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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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堤趙氏 |
영어의미역 | Gimje Jo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집필자 | 김병학 |
세거지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옥산동|복죽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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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성촌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옥산동|복죽동 |
입향시기/ 연도 | 1220~1240년경 |
성씨시조 | 조연벽 |
입향시조 | 조연벽 |
[정의]
조연벽을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연원]
김제조씨(金堤趙氏)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 태조 조광윤(趙光胤)의 후예라 전해오고 있으나 고증할 수 없고, 실제로는 조연벽(趙連璧)을 시조로 하고 있다. 조연벽은 1232년(고종 19)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왕명으로 대장이 되어 처인성(處仁城)에서 적을 공멸한 공으로 벽성군(碧城君)에 봉해졌는데, 신라 757년(경덕왕 16) 벽성이 김제로 바뀌자 후손들이 김제를 본관으로 삼았다.
[입향경위]
시조이자 낙향조인 조연벽은 고려 고종 때 대장군이 되었고 벽성군에 봉해지면서 김제 지역으로 낙향하였다. 이후 후손들이 이 지역에 번창하기 시작했다.
[현황]
조연벽의 후손들은 김제시 교동·옥산동·복죽동 등지에서 집성촌을 이루며 번창하여 살고 있다. 대호군 조기(趙岐), 좌승지(左承旨)·대사헌(大司憲)을 지낸 조서(趙瑞), 효행으로 정려(旌閭)를 받은 조간(趙簡)과 조용창(趙用昌), 보문각학사(寶文閣學士) 조영회(趙令晦) 등이 유명하다. 또한 병조참판영립충신록 정려를 받은 조영립(趙英立)과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를 역임한 조필달(趙必達), 명필로 이름난 조주승(趙周昇)과 조기석(趙沂錫) 등도 조연벽의 후손들이다.
[관련유적]
김제시 교동월촌동에 김제조씨 시조묘가 있고, 복죽동 죽절마을에는 조간(趙簡)·조휘령·조휘통·조휘회 등을 모신 숭모사가 있으며, 충신 조영립 정려(忠臣趙英立旌閭)도 위치하고 있다. 김제시 교동 용암서원에는 문양공 조간이 모셔져 있고, 조간의 유허비는 옥산동에 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104호로 지정된 조필달 장군 유물(趙必達將軍遺物)이 김제시 복죽동 민속유물전시관에 전시되어 있다. 효자 조항진 정려(孝子趙亢晋旌閭)는 김제시 옥산동 옥거리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