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6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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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兩石-廢金鑛 |
영어의미역 | Abandoned Mine in Yangseok Village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지명/시설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노대진 |
성격 | 광공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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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적 | 1,144ha(양석마을 폐금광+선암리 폐금광) |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에 있었던 금광.
[개설]
오봉리는 금구면의 동쪽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오양리, 지봉리, 목련의 일부를 합하여 오양과 지봉의 이름을 따 오봉리가 되었다. 한편으론 양석, 오산, 지장, 봉림, 목련 등 다섯 개 마을이 있어 오봉리가 되었다고도 한다. 양석마을은 오산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입구에 선돌 두 개가 나란히 서 있어서 양석(兩石)이라 불렸는데 김제 행정구역의 통폐합 때 뜻이 다른 ‘염소 양(羊)’ 자를 써 ‘양석’이 되었다고 한다.
[건립경위]
오봉리의 양석마을은 1900년대 초 몇 가구밖에 살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으나, 일본 사람들이 금광을 개발하면서 일자리를 찾아온 광부들로 인해 큰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변천]
1902년부터 양석마을 꼬갈봉[278m] 일대에 광산이 개발되기 시작되었으며, 1933년 광업권이 설정되었다. 1936년 일본광업에서 이를 인수하여 대규모 시설을 갖추고 개발되었던 것으로 추측되며,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 「금광정비법」에 따라 폐쇄되었다. 1965년 귀속 재산으로 국유화되었으며, 1977년 설립된 금구광산(金溝鑛山)[광권자 손기창]이 인수하였다. 금구광산은 30만t 규모의 선광 시설을 갖추고 금광을 개발하기 시작하였으나 얼마 되지 않아 폐광되었다. 폐광 이전 금구면 광산 생산량은 금 266,554g, 은 410,999g, 동 4,997t에 이르렀다.
[현황]
일제강점기에 양석마을의 고깔봉 일대는 금을 채취하기 위해 많은 일본인들이 드나들기 시작하였다. 일본인들은 꼬갈봉에 거미줄처럼 터널을 뚫기 시작하였는데, 그 터널이 금산사까지 이어졌다고 한다. 이렇게 뚫린 굴 때문에 한여름 날씨가 더울수록 굴에서 나오는 바람은 더 차다고 한다. 폐광 입구는 지름 4m이며, 수직으로 60m를 내려가면 330㎡ 정도의 광장이 있다. 그 광장에서 시작하여 약 60㎞의 굴이 연결되어 있다. 현재 당시 금광에 종사했던 사람들이 거주하던 주택 14동이 양석마을에 원형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금구광산은 1995년까지 방치되었다가, 관광지로 개발하자는 데 뜻을 모아 동굴 천장에 철골구조물과 바닥에 평상을 설치해 양석냉풍굴로 만들었다. 양석냉풍굴의 갱도 입구는 가로, 세로 각각 약 1.5m가량으로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냉기는 가히 에어컨을 방불케 한다. 입구에서 100m까지 왕래가 가능하나,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양석냉풍굴 안은 한여름에도 항상 12℃ 정도를 유지하며, 폐광 안쪽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무더위를 쫓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찾으면서 관광지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여름인 7월과 8월에는 양석마을부녀회와 청년회에서 닭백숙과 닭볶음탕, 보리비빔밥 등을 판매하고 있다. 이를 통한 수익금은 마을 운영 및 자생 단체 기금, 경로당과 불우이웃 지원에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