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
-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 뒷산이 풍수지리상 왕개미를 닮은 형국으로, 그 머리 부분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개머리’ 또는 ‘개미머리’라 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한자로 전환하면서 의두리(蟻頭里) 또는 의두마을이라 하였다. 한편 개머리의 북서쪽에 신평천(新坪川)이 흐르고 있는데, 지금은 하류인 성덕면 수교에 수문을 설치하여 바닷물이 들어오지 않지만 옛...
-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과 성덕면, 죽산면에 걸쳐 있는 농경지. 남포들 주변으로 신평천(新坪川)이 남서류하여 공사중인 새만금간척지로 유입된다. 서북쪽으로는 해안 간척지인 광활들과 진봉들이 이어져 광활한 평야를 이루고 있다. 남포들은 신평천의 하류 일대에 위치하고 있다. 김제시 복죽동과 성덕면 대석리 하곡 충적평야와 성덕면 남포리, 죽산면 종신리·대창리 일대의 해안 충적평야로 이루어져...
-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 있는 자연마을. 조선시대인 1650년경 마을 입구에 마을로 들어서는 리문(里門)이 세워지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 마을에 대나무가 무성하여 대메[竹山]라고도 불렀으며, 나중에 마을이 커짐에 따라 상죽(上竹)과 하죽(下竹)으로 나누어졌다. 이때 서쪽의 상죽마을을 죽절, 동쪽의 하죽마을을 리문이라고 불렀다. 리문안 터에 자리를 잡고 살기 시작한 사람은 조선...
-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 있는 조선 후기 전통 가옥. 오영순 가옥은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 죽절마을에 있는 초가집으로 왕개산 아래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19세기 중엽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건립 당시에는 3칸 정도였으나 20세기 초에 와서 정지[부엌] 아래쪽을 증축·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오영순 가옥은 정면 7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전체적인 구조는 안채·헛간채·문간채로...
-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조영립의 정려. 조영립(趙英立)의 본관은 김제, 자는 사수(士秀)이다. 선조 때 인물로 충과 효를 함께 행한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총명하고 효성이 지극했던 조영립은 정유년에 과거에 오르고, 무오년에 아이만호(阿耳萬戶)라는 벼슬에 올랐다. 북쪽 오랑캐들이 창칼을 앞세우고 쳐들어오자 조영립은 자원하여 군에 들어가 좌영장 김응하와 더불어 오...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효자.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자선(子善), 호는 회헌(晦軒)이다. 조용창(趙用昌)은 지금의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가 병을 얻어 몸져누우면 정성을 다하여 약을 달여 올리고,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깨어나게 하였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르고 3년 동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정...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무신 조필달의 유물. 조필달(趙必達)[1600~1664]은 본관이 김제이며 문양공(文良公) 조간(趙簡)의 11세손이다. 무과에 급제한 후 1630년(인조 8) 충좌위우부장(忠佐衛右部將)에 처음 제수되었다. 그 후 순안현령, 보성군수, 양주목사, 포도대장(捕盜大將), 전라병마절도사(全羅兵馬節度使), 삼도통제사(三道統制使) 등...
-
전라북도 김제시 복죽동에 있는 자연마을. 마을에 대나무가 무성하여 대메[竹山]라 하였는데, 나중에 마을이 번창하여 상죽(上竹)과 하죽(下竹)으로 나누어졌다. 이때 서쪽의 상죽마을은 죽절(竹節), 동쪽의 하죽마을은 리문(里門)이라고 하였다. 죽절이 있는 복죽동은 원래 김제군 대촌면 지역으로 1914년 월촌면이 되었고, 1989년 김제읍이 김제시로 승격하면서 김제시 교동에 편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