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리농림학교
-
구한말에서 해방 이전까지 전라북도 김제시를 중심으로 실시된 계몽주의 교육. 교육사적 견지에서 근대교육이라 하면 중세의 봉건적 또는 도제식 교육 형식을 거쳐 계몽사조를 기초로 나타난 계몽주의 교육을 말하며, 제도적으로는 공교육 체제 또는 의무 교육제가 나타난 것으로 18세기의 일이다. 한국의 경우는 근대를 언제로 보느냐에 따라 다소 견해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1880년대부터 1945...
-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한국화가. 나상목(羅相沐)의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벽천(碧川)이다. 1924년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신용리에서 태어났다.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일명 국전]에서 4회 연속 특선을 하는 등 산수화의 대가로 인정받았다. 나상목은 1939년 이리농림학교에 진학한 뒤 그림에 대한 재능을 나타내면서 독학으로 동양화 기법을 스스로 익혀 나갔다. 1945년 8·15해방...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사회의 변혁과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해 집단적으로 전개되는 일체의 행동. 사회운동은 기존 사회의 사회 규범 또는 가치 체계 등의 변혁이나, 어떤 사회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행동하는 조직적·집단적 활동이다. 사회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자발적인 대중 운동으로서 흔히 시위운동, 서명 운동, 연좌 농성 등의 형태로 표출되기도 하며 사회 전반에 걸쳐 일어나는...
-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상운(李相云)은 1927년 전라북도 김제시 요촌동에서 태어났다. 이리농림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3년 이상운은 급우인 김구(金丘), 김봉수(金鳳洙), 장이규(張二圭), 박기춘(朴基春), 강동석(姜東錫), 김진수(金眞洙) 등을 규합하여 화랑회(花郞會)를 조직하였다. 이후 이상운은 화랑회 회원들과 함께 김제군 모악산에 있는 일본군...
-
이민자들에게 자녀는 미래다. 그래서 바다일도 나가고, 땅도 팔아서 자녀들을 교육시킨다. 가깝게는 김제로, 익산으로, 전주로 학교를 보내고, 멀리는 서울까지 유학을 보낸다. 1960년대에 광활면 주민 중 대학생이 192명이나 있었다고 한다. “광활이 지금은 광활하면 김제 가서도 부자 동네라고 그러는데, 예전에 우리 학교 다닐 때 여기 대학생만 192명이나 있었어요. 그니까 왜 그런...
-
일제강점기 이리농림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화랑회가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일제에 대항하여 무장 투쟁을 벌이려던 사건. 일제강점기 일본의 압제에 항거하는 학생들의 투쟁은 광주학생운동 등 여러 가지 사건으로 나타났고, 일제 패망이 임박하여 조선인의 독립 투쟁에 대한 폭압적인 탄압이 계속되었음에도 학생들의 민족의식과 투쟁심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1943년 이리농림학교에서 결성된 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