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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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전통시대와 현대에 지어진 건축물. 건축이란 집이나 성, 다리 따위의 구조물을 그 목적에 따라 설계하여 흙·나무·돌·벽돌·쇠 따위를 써서 세우거나 쌓아 만드는 일이다. 김제시의 건축 유구(遺構)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도작문화(稻作文化)의 특징에 걸맞게 삼국시대 축조된 수리 시설부터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대표적인 유적이 벽골제이다. 이후 금산사가 창건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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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제월동·명석동·입석동·장화동·복죽동·옥산동·신월동·월봉동·연정동·갈공동·신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교동(校洞)은 향교가 위치한 데서 유래하였고, 월촌동(月村洞)은 1914년 월산면과 대촌면이 통합될 때 ‘월’자와 ‘촌’자를 따서 월촌면이라 한 데서 유래하였다. 교동은 1914년 이전에는 김제군 읍내면 지역으로, 1914년 읍내면·입천면·대촌면 일부와 함께 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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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중앙부 서쪽에 있는 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蘆嶺山脈)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으로 동진강(東津江)을 경계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으로 만경강(萬頃江)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이웃하고, 서쪽은 서해와 닿아 있다. 경위도상 북위 36°, 동경 127°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도시로 위도로는 북위 35° 40′~35° 55′, 경도로는 동경 12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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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중앙부 서쪽에 있는 시. 김제시는 동쪽으로 노령산맥(蘆嶺山脈) 주능선을 경계로 완주군, 남쪽으로 동진강(東津江)을 경계로 정읍시·부안군, 북쪽으로 만경강(萬頃江) 및 그 하구를 경계로 익산시·군산시와 이웃하고, 서쪽은 서해와 닿아 있다. 경위도상 북위 36°, 동경 127°의 교차점에 자리 잡은 도시로 위도로는 북위 35° 40′~35° 55′, 경도로는 동경 12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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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벽을 시조 및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김제조씨(金堤趙氏)의 시조는 중국 송나라 태조 조광윤(趙光胤)의 후예라 전해오고 있으나 고증할 수 없고, 실제로는 조연벽(趙連璧)을 시조로 하고 있다. 조연벽은 1232년(고종 19)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왕명으로 대장이 되어 처인성(處仁城)에서 적을 공멸한 공으로 벽성군(碧城君)에 봉해졌는데, 신라 757년(경덕왕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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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김제조씨 동성마을. 김제조씨(金堤趙氏)는 조연벽(趙連璧)을 시조로 하는 김제시 세거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조연벽은 1232년(고종 19)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왕명으로 대장이 되어 처인성(處仁城)에서 적을 섬멸한 공으로 벽성군(碧城君)에 봉해졌는데, 벽성이 김제로 이름이 바뀌자 후손들이 관향을 김제로 하여 김제에 세거하면서 번창하기 시작했다. 조연벽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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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효자. 본관은 나주(羅州). 자는 중장(仲章), 호는 이이당(怡怡堂)·구산처사(龜山處士). 아버지는 건계(建溪) 나안세(羅安世)이고, 형은 행정(杏亭) 나응허(羅應虛)이다. 나응삼(羅應參)은 아버지가 병환으로 자리에 눕자, 그 변을 직접 맛보며 병세를 살폈고, 돌아가시자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하였다. 또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한결같이 예법에 따랐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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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나주나씨 동성마을. 나주나씨(羅州羅氏)는 중국 백익(佰益)의 후예로, 주대(周代)에 대라씨(大羅氏)로 나국(羅國)에 봉해져 나씨가 되었고, 한나라 초에 예장(豫章)으로 옮겨 예장나씨가 되었다. 문헌에 따르면, 시조 나부(羅富)가 봉명사신으로 고려에 왔다가 미처 돌아가지 못한 사이에 송나라가 멸망하니 발라현(發羅縣)[지금의 나주]에 정착하고 고려조에 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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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산. 백제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과 석성이 있어 성산(城山)으로 불린다. 성산(城山)은 『한국지명총람』에는 ‘삼국통일 전쟁 때 당나라 원병이 백제와 싸우기 위해 토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산은 서해안에 가까이 있어 해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좋은 요새지였다고 한다. 『김제읍지(金堤邑誌)』에는 동헌을 중심으로 성산을 비롯한 교동, 옥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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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산. 백제 때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토성과 석성이 있어 성산(城山)으로 불린다. 성산(城山)은 『한국지명총람』에는 ‘삼국통일 전쟁 때 당나라 원병이 백제와 싸우기 위해 토성을 쌓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산은 서해안에 가까이 있어 해적의 침입을 방어하기에 좋은 요새지였다고 한다. 『김제읍지(金堤邑誌)』에는 동헌을 중심으로 성산을 비롯한 교동, 옥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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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시 교동 일대에 자리 잡은 성산(城山)은 김제시의 주산으로 해발 고도 30~41m의 야트막한 구릉 산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 약 40㎞를 관망할 수 있다. 성산 주위에는 사적 제482호인 김제군 관아와 향교, 벽성서원(碧城書院), 용암서원(龍巖書院), 홍심정(紅心亭) 등 김제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문화 유교 자산이 잘 남아 있어 김제시의 정체성을 말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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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 전기 서원. 용암서원(龍巖書院)은 조간(趙簡)을 주벽으로 하여 이계맹(李繼孟)[1458~1523]·나안세(羅安世)[1475~1527]·윤추(尹推)[1632~1707]·이세필(李世弼)[1642~1718]·나응삼(羅應參)[1505~1568]·조윤침(趙潤琛) 등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조간의 호는 열헌(悅軒), 본관은 김제(金堤)이다. 1279년(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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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보급된 종교로서 유학의 연원과 전개 현황. 호남은 지역적으로 영남유학과 대별되는 기호유학에 포함되어 있다. 호남 향촌사회의 유학자들은 도학사상을 기반으로 학술활동 및 치민활동을 하면서도 의리와 실천을 그 근본정신으로 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김제 지역 유교의 전래는 김제향교와 금구향교, 만경향교를 중심으로 용암서원을 비롯한 30여 개의 서원·재·강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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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희순(希醇), 호는 묵곡(墨谷)·묵암(墨巖)이다. 아버지는 이영(李穎)이고, 어머니는 생원 채소명(蔡紹明)의 딸이다. 이계맹(李繼孟)은 1483년(성종 14)에 진사·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489년(성종 20)에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설서(說書)·검교·정언·집의·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98년(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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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계맹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전의이씨(全義李氏)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합할 때의 공으로 삼한개국공신으로 책봉되고 삼중대광태사의 벼슬에 올랐던 이도(李棹)를 시조로 하고 있다. 이도가 전의(全義)[지금의 충청남도 연기군]에 살았고, 개국공신으로 전산후(全山候)에 봉작되어 전의현(全義縣) 일대를 식읍으로 하사받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전의(全義)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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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문신. 본관은 김제(金堤). 아버지는 조연벽(趙連璧)이다. 조간(趙簡)[1264~1325]은 1279년(충렬왕 5)에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이듬해에 왕이 친시(親試)하였는데, 여기에서도 1위를 차지하여 황패(黃牌)를 받고 내시(內侍)에 소속되었다. 아버지가 죽은 뒤 시묘를 3년간 하였는데, 왕의 칭찬을 받고 특례로 기거주(起居注) 벼슬을 받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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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학자. 본관은 김제(金堤). 자는 가헌(可獻), 호는 백천당(百千堂). 아버지는 공조참판을 역임한 조원우(趙元祐)이며,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윤침(趙潤琛)[1476~1545]은 어려서부터 글을 즐겨 읽고, 효성 또한 극진하여 주위의 칭송이 자자했다. 사람을 대하는 데 성(誠)과 예(禮)를 다했고, 생활은 한 치도 예의범절에 어긋남이 없었다. 중종 때에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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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김제 지역은 백제시대부터 불교가 전래되어 현재까지 성행하고 있으며, 고려 말 유교 도래 이후 일찍이 근대 시기에 천주교와 개신교가 전래되었다. 또한 자세한 통계는 없으나 한때는 계룡산보다도 신종교가 많았다고 전해질 정도로 모악산을 중심으로 다양한 신종교가 성행하였고 현재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김제 지역 불교에 중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