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맹
-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역사 인물에 관한 자료를 모은 책. 『우리고장 인물사』는 김제 지역의 주요 역사 인물 관련 향토사 서적으로, 2002년 김제문화원에서 간행하였다. 『우리고장 인물사』는 단행본 1권으로 총 360쪽 분량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고장 인물사』는 김제문화원장의 발간사, 김제시장·김제시의회 의장의 축간사를 시작으로, 제1편 학자, 제2편 정치인, 제3편 종교인, 제...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김제조씨 동성마을. 김제조씨(金堤趙氏)는 조연벽(趙連璧)을 시조로 하는 김제시 세거성씨 가운데 하나이다. 조연벽은 1232년(고종 19) 몽고군이 침입했을 때 왕명으로 대장이 되어 처인성(處仁城)에서 적을 섬멸한 공으로 벽성군(碧城君)에 봉해졌는데, 벽성이 김제로 이름이 바뀌자 후손들이 관향을 김제로 하여 김제에 세거하면서 번창하기 시작했다. 조연벽의...
-
전라북도 김제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평야 지대로 과거 1차 산업이 소득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에는 다른 고장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풍요를 누리던 고장이다. 따라서 의식주의 풍요는 수준 높은 선비 문화로 승화되어 학문과 예술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김제 유학(儒學)은 다른 고장과 달리 항상 서화의 흥을 동반한 선비 문화로 계승되어 직업적인 화공이 아니라 선비 출신의 서화인으로 오늘날까...
-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국악, 미술, 문학, 사진, 음악, 무용 등의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전라북도 김제시는 예부터 넓은 금만경평야를 끼고 있어 경제적으로 여유롭고 넉넉한 고장이었다. 이러한 풍요로움 속에서 문화와 예술을 즐길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이 분야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었다. 특히 시(詩)·서(書)·화(畵)와 국악의 수준은 가히 본고장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며,...
-
김제시 교동 일대에 자리 잡은 성산(城山)은 김제시의 주산으로 해발 고도 30~41m의 야트막한 구릉 산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사방 약 40㎞를 관망할 수 있다. 성산 주위에는 사적 제482호인 김제군 관아와 향교, 벽성서원(碧城書院), 용암서원(龍巖書院), 홍심정(紅心亭) 등 김제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한 전통문화 유교 자산이 잘 남아 있어 김제시의 정체성을 말해 주고 있다....
-
전라북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 전기 서원. 용암서원(龍巖書院)은 조간(趙簡)을 주벽으로 하여 이계맹(李繼孟)[1458~1523]·나안세(羅安世)[1475~1527]·윤추(尹推)[1632~1707]·이세필(李世弼)[1642~1718]·나응삼(羅應參)[1505~1568]·조윤침(趙潤琛) 등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조간의 호는 열헌(悅軒), 본관은 김제(金堤)이다. 1279년(충...
-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 보급된 종교로서 유학의 연원과 전개 현황. 호남은 지역적으로 영남유학과 대별되는 기호유학에 포함되어 있다. 호남 향촌사회의 유학자들은 도학사상을 기반으로 학술활동 및 치민활동을 하면서도 의리와 실천을 그 근본정신으로 하는 강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김제 지역 유교의 전래는 김제향교와 금구향교, 만경향교를 중심으로 용암서원을 비롯한 30여 개의 서원·재·강당에...
-
조선 전기 전라북도 김제에서 만년을 보낸 문신. 본관은 전의(全義). 자는 희순(希醇), 호는 묵곡(墨谷)·묵암(墨巖)이다. 아버지는 이영(李穎)이고, 어머니는 생원 채소명(蔡紹明)의 딸이다. 이계맹(李繼孟)은 1483년(성종 14)에 진사·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489년(성종 20)에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여 설서(說書)·검교·정언·집의·좌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498년(연산...
-
전라북도 김제시 제월동에 있는 석등. 재궁리 석등은 김제시 제월동 재궁마을에 있는 조선시대의 유학자 이계맹(李繼孟)[1458~1523]과 부인 최씨 묘 앞에 놓여 있다. 이계맹은 1489년(성종 20)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예조·호조·형조 등의 판서를 거쳐 좌찬성에 이르렀다. 재궁리 석등은 중종 때 이계맹이 광국공신이 됨으로써 중종 임금이 하사한 것으로 알려진 석등이다. 김제시에서...
-
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계맹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전의이씨(全義李氏)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합할 때의 공으로 삼한개국공신으로 책봉되고 삼중대광태사의 벼슬에 올랐던 이도(李棹)를 시조로 하고 있다. 이도가 전의(全義)[지금의 충청남도 연기군]에 살았고, 개국공신으로 전산후(全山候)에 봉작되어 전의현(全義縣) 일대를 식읍으로 하사받았기 때문에 후손들이 전의(全義)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