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
조선 후기의 의병이자 성리학자. 고봉익(高鳳翼)은 광해군 재위 기간에는 과거를 포기하고 성리학에 몰두하였으며, 유집(柳楫), 조성립(趙成立)과 교유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의 난과 1627년(인조 5) 정묘호란 때 군량을 모으고 의병을 모집하여 왕을 모셨다.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 지음마을에 있는 지음서원(芝陰書院)에 배향되어 있다....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함양(咸陽). 토헌(土軒) 박초(朴礎)의 후손이다. 박충길(朴忠吉)은 부장(部將)을 지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는 피난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둘째 아들 광해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백관들은 권정례(權停例)로써 진하(陳賀)하였다. 왕은 사관에게 명하여 종묘와 사직의 주판(主版)을 받들고 먼저 떠나게 하고 왕...
-
조선 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수원(水原). 자는 수여(秀汝). 고조할아버지는 첨사(僉使) 백장(白璋)이며, 아버지는 선전관청선전관(宣傳官廳宣傳官)을 역임한 백광호(白光浩)이다. 백선남(白善男)[?~1636]은 1603년(선조 36) 무과에 급제하였으나 광해군의 패륜함을 목도하고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다가 인조 때 창원부사에 임명되어 청백리(淸白吏)로 칭송받았다. 1636년(...
-
조선 후기 전라북도 김제 출신의 충신이자 효자. 본관은 해주(海州). 자는 여신(汝信), 호는 퇴암(退庵). 오종손(吳從孫)의 현손으로, 동생은 오대익(吳大益)·오대진(吳大晋)이다. 조선 광해군 때 사옹원봉사로 있었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인조가 충청도 공주로 파천하자 두 동생과 함께 왕을 호종하였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동생들과...
-
조선 후기 문신이자 의병. 정묘호란은 1627년(인조 5) 후금(後金)이 조선을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을 말한다.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의 친명배금(親明排金) 정책과 후금 태종의 조선에 대한 주전정책(主戰政策)이 충돌하면서 발생하였다. 인조 즉위 후 집권 세력인 서인은 광해군 때의 대외 정책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후금과의 관계를 끊는 한편, 친명배금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후금은...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이자 의병.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응운(應運), 호는 수곡(樹谷). 문화군(文化君) 유진(柳鎭)의 8세손이다. 부인은 한양조씨(漢陽趙氏)로 승지에 증직된 유정(惟精)의 딸이다. 아들로 병자호란 때 의병을 일으킨 유집(柳楫)[1585~1651]과 유도(柳棹)[1592~?]가 있다. 유태형(柳泰亨)은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사마시(司馬...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문신.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부터 1598년(선조 31)까지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입한 전쟁이다. 1차 침입이 임진년에 일어나 임진왜란이라 부르고 2차 침입이 정유년에 일어나 정유재란이라 하는데, 임진왜란하면 일반적으로 정유재란까지 포함시켜 말한다. 1592년 4월 14일 일본군이 부산포에 침입하자 이와 맞서 부산진의 첨사 정발(鄭撥)이...
-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 지음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지음서원은 충정공 이귀(李貴)[1557~1633]·나협[1546~1632]·나수눌(羅守訥)·고봉익(高鳳翼)·나처대(羅處大)[1714~1791]·나희후(羅喜厚) 등의 위패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이귀의 호는 묵재(墨齋), 자는 옥여(玉汝),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이이(李珥)[1536~1584]와 성혼(成渾)[1535~1598]...
-
조선 전기 김제 출신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백(麗百). 만육(晩六) 최양(崔瀁)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최후신(崔後臣)이다. 최득남(崔得男)은 지금의 김제시 금구면에서 태어났으며, 무과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가 피난길에 오르자 위험을 무릅쓰고 당시 세자인 광해군을 호종하였다. 위성원종공신(衛聖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위성원종공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