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C030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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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 내촌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해수 |
여름 한낮, 너머뜸 어귀 강순례 할머니 댁 그늘진 담장 밑은 오가는 이들의 휴식처이자 울 밖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겨울에도 강순례 할머니의 울안에 있는 작은 사랑채에는 군불을 때는 아궁이가 있어 추운 날 불을 지펴 놓고 몇 분이 모여 도란도란 정담을 나눈다고 한다.
[마을 사랑방 강순례 할머니 집]
처음 우리가 강순례 할머니 집을 방문할 당시, 할머니 두 분이 얇은 비닐을 깔고 담장 밑에 앉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에 찾아갔을 때 쿠션이 있는 넓고 두꺼운 깔개를 준비해 가져갔다. 사람들이 작은 것에 감동하듯 할머니들 역시 깔개 하나를 무척 고마워했다.
내촌을 갈 때마다 빼놓지 않고 강순례 할머니 댁 담장 그늘을 들러 보면, 늘 그 자리에 여러 할머니들이 앉아서 더위를 피하고 있었다. 예전의 사랑방이 그러하듯 이곳에서도 마을에서 일어난 소식은 순식간에 날개를 달고 소문이 되어 퍼졌다. 일일이 많은 마을 주민들을 만나지 않아도 가벼운 소식들은 이곳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백중날 잡은 강아지가 발바리다, 아니다 새로 사왔다, 등등…….
언젠가는 열 분 남짓 가장 많은 사람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 그분들 중 두 분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방문할 때마다 교회 전도를 잊지 않았다. 그런데 이곳 노인들의 휴식 터를 찾아 주는 반가운 사람이 있었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 순찰을 도는 경찰관으로,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사탕을 하나씩 나눠 준다. 그래서 멀리서 자전거를 탄 경찰관이 나타나면 할머니들이 “저기 사탕순사 오네.” 하며 아이들처럼 즐거워했다. 은근히 그 경찰관이 기다려진다는 할머니 한 분께 왜 사탕을 주는지 아느냐고 물어 보니, “걍 주닝게 받지.” 한다. 더 이상 말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시골 사람들만의 순박함이 엿보인다.
그래도 행여 하는 마음에 다시 그 경찰관에게 사탕을 받고 뭔가 그분께 준 적은 있는지를 물었더니, “촌에 뭐가 있어야 주지.” 하며 수줍어한다.
[가까운 이웃에 정붙이고 살지]
어느 무더운 여름날 오후 3시경, 할머니들이 하나둘 담장의 그늘을 나섰다. 허리가 많이 구부러지고 왜소한 할머니 한 분이 고춧대를 뽑아야 한다며 유모차를 밀고 나서기에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일하는 장면을 찍으려고 사진기를 들이대었는데, 도저히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뽑아야 한다는 고춧대는 아직 풋고추가 주렁주렁 열려 있고, 그 고춧대를 뽑고 계신 할머니가 오히려 뽑힐 것만 같이 위태롭게 보였던 것이다.
아직 풋고추가 많이 달려 있는데 왜 뽑으려 하느냐고 물으니, 먹을 만큼은 이미 딴 데다 김장배추와 마늘을 심을 때가 되어서라고 한다. 카메라를 치워 두고 고춧대를 뽑아 주겠다고 팔을 걷고 나섰다. 그런데 고춧대도 힘들지만 고정해 놓은 말뚝은 여간해서 뽑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더욱 고생할 할머니를 생각하며 그리 크지 않은 텃밭의 고춧대와 말뚝을 땀 흘려 가며 다 뽑았다. 대신 할머니께는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게 버린다는 풋고추를 좀 따 달라고 했다.
얼굴이 환해져서 고맙다고 하시며 건네주는 풋고추 포대를 들고 담장 그늘로 돌아오니 그곳에 계시던 강순례 할머니가 왜 이리 늦었냐면서, “아 그새 그걸 다 뽑았어? 그 냥반 오늘 횡재했네. 고거 다 뽑을라먼 한 1주일 내동 고상함서 몸살을 힜을틴디. 아무당간 참 고맙네. 애씀서 고거 뽑아 줘서.” 하며 마치 자신의 일처럼 고마워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농촌의 정은 멀리 떨어져 사는 혈연보다도 가까운 이웃이 더 크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혼자 먹을 거 심어 먹는 거야]
내촌마을은 평야지인 까닭에 논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울안에 밭을 만들어 놓고 채소를 가꾸면서 자급자족하는 분위기다. 이사를 가고 비어 있는 집 마당도 예외 없이 사정을 아는 이웃이 채소를 심어 놓았다. 쌀이 귀한 예전 같으면 밭도 물이 닿는 곳이면 논으로 개간하여 나락을 심었겠지만 요즘은 오히려 밭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논은 거의 세를 내주고 수확할 때 쌀이나 돈으로 받으니 걱정할 일이 없다. 그 대신 평생 동안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시골 할머니들은 힘들지 않은 범위에서 밭일을 하고 싶어 한다. 밭에 심는 채소와 작물은 내다팔 정도의 큰 규모까지 재배하지는 못해도 심을 만한 것들은 거의 다 심어서 먹는다. 논을 밭으로 바꿔서 뭔가를 심는다는 주민은 젊다는 이야기지만, 밭이 있다 해도 기력이 떨어져 갈 수 없는 노인들에게는 마당만으로도 충분하다.
“아, 밭도 없지만 가서 꼼지락거릴 힘이나 있간디. 요새는 마당이 밭이나 마찬가지여. 없는거 없어. 팔라고만 안 허먼 저리 같잖게 뵈아도 나 혼자는 먹고도 남고 새끼들까지 노놔 준당게.”
할머니들 말에 따르면, 요즘은 텃밭이나 마당 한켠에 비가림 비닐하우스를 두어 그곳에서 쉽게 물도 줄 수 있어 채소 가꾸기가 쉽단다. 뭔가 말리는 일에도 거두고 다시 펴서 널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없으니 마당이나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 할머니들에게 비가림 비닐하우스는 꼭 필요한 시설물이 되고 있었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