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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C020201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 내촌마을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선희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길쌈 일을 배우다]

중멀댁으로도 불리는 강곡례[1930년생] 할머니는 마을에서 인정하는 베 짜기 선수였다고 한다. 지긋지긋할 만큼 고생스러웠던 길쌈 일이었지만, 강곡례 할머니는 지금도 마을에서 본인이 제일의 실력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내촌에서 나고 자란 강곡례 할머니가 길쌈을 처음 배운 것은 열일곱 살 때라고 한다.

뒤늦게 학업을 시작하고 6학년 졸업반이었던 당시, 마을에 일본군 위안부를 모집하기 위해 사람들이 오고 또래 한 명이 차출되어 갔다.

어리다는 이유로 되돌아오긴 했지만 마을의 처자들 사이에서는 일본 사람 눈에 띄면 잡혀 갈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형성되었다.

그러자 그녀의 할머니가 학교 다니다 잡혀 가면 큰일 난다며 책을 불사르고 집에서 길쌈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강곡례 할머니는 한창 밖에 나가 놀고 싶던 나이임에도 끌려가는 게 무서워서 조용히 집에서 시키는 일을 했다.

어린 나이에 길쌈을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보통 누에 농사는 한 달 농사라고 한다. 주로 봄과 이른 여름[7월 초]에 한 차례씩 누에 농사를 통해 실을 뽑는다. 뽕나무 밭에서 누에를 가져오면 작업용 방에 놓는다. 누에를 가져다 놓은 지 4일이 지나면, 누에는 1주일간 지푸라기에 올라가 스스로 고치 집을 짓는다.

이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기 위해 솥단지에 넣고 삶는다. 그 과정에서 화상을 입는 일도 잦았다. 삶아진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아내면 남는 것은 번데기뿐이다. 남은 번데기는 아이들의 영양 간식이 되고, 잘 뽑아진 명주실은 명주 베를 짜는 데 이용된다. 실을 뽑아 베로 만들어지는 과정은 어지간해서 말로는 쉽게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일이었다.

강곡례 할머니는 주로 여름에는 모시를, 겨울에는 미영[목화]과 명주 베 등을 짰다. 뽕나무는 인근 야산에서 키웠고, 모시밭도 있어서 집집마다 베를 많이 짰다.

[재주가 좋아 일이 끊이질 않았어]

젊은 강곡례 할머니는 눈도 잘 보이고 손도 빨라서 이집 저집 불려 다니며 일을 했다. 하루에 70자 혹은 60자 되는 베 한 틀은 거뜬히 짜는 실력으로 인해 인기 만점이었다. 할머니는 서로 품앗이 개념으로 일을 하긴 했지만 일을 하고 나면 쌀 한 되[1㎏]를 받곤 했는데, 돈벌이도 돈벌이지만 너무 자주 불려 다녀 넌더리가 날 지경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할머니는 스무 살 때 봉남면으로 시집을 가면서 잠시 베 짜는 일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7년 뒤 섣달[12월], 할머니는 남편과 첫아들과 함께 친정이 있는 내촌으로 다시 이주해 왔다.

시부모가 일찍 돌아가시고 살던 곳이 농사를 짓기에 척박했기 때문이다.

고향으로 돌아옴과 동시에 마을에서 베 짜는 일은 또 강곡례 할머니의 몫이 되었다. 아이들을 들쳐 업고 베를 삶거나 강목에 물을 들이다 딸아이가 데인 적도 있었다. 지금도 딸아이의 흉터를 보면 마음이 짠하지만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길쌈해서 집안 살림도 불렸어]

처음에 할머니 식구는 친정에 의지해 살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살아 보고자 쌀 12짝을 주고 논 한 필지를 구입했다.

남편은 농사를 짓고, 강곡례 할머니는 이집 저집 길쌈을 다니면서 한 해 농사로 논 한 필지에 대한 본전을 찾을 수 있었다.

강곡례 할머니는 길쌈을 통해 모은 돈으로 샀던 돼지가 소로 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해 주었다.

“작은 돼지였어. 어디 묶어 두기가 그래서 그냥 집에 풀어 놨지. 근디 돼지가 똥간에 빠진 거여. 애들 아빠가 가서 빼려고 하는데 이것이 허우적거려 가지고 애먹었었지. 빼내긴 했는데 그때부터 그 돼지가 엄청 잘 먹더라고. 그것이 넉 달 만에 40근까지 나간 거여. 그래서 팔고 소를 샀지.”

1960년대 후반에 이르러 섬유 산업이 발전하면서 강곡례 할머니는 더 이상 길쌈을 하지 않았다. 강목을 염색해 옷도 해 입고 이불도 해 입던 시절이 지나간 것이다.

강곡례 할머니는 길쌈 기술이 없었다면 늦은 나이에 시집가서 늦게 본 큰아이를 학교 보낼 때까지 살림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회상한다. 고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인기 많았던 그때가 좋았다고 말한다.

[정보제공]

  • •  강곡례(여, 1930년생, 홍산리 내촌마을 구석뜸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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