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C01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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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홍산리 내촌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배해수 |
[내촌마을 찾아가는 길]
홍산리 내촌마을을 찾아가려면 먼저 김제시에서 부안 방면으로 국도 23호선을 따라 약 6㎞를 따라가다 보면 나오는 죽산면을 찾아가야 한다. 또 다른 길도 있다. 김제시 남서쪽 외곽의 후신 교차로에서 국도 29호선으로 들어서서 벽골제를 향해 2㎞ 정도 가면 월촌우체국 사거리에 ‘죽산’이란 이정표가 보인다. 이 길을 따라 다시 4㎞ 정도를 가다 보면 홍산리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 삼거리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조금 더 진행하여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이 내촌마을 진입로이다.
[내촌마을 입구 풍경]
내촌마을 입구에서 버스정류장을 지나쳐 조금만 더 가면 오른쪽으로 아직도 예전의 오래된 종탑을 그대로 둔 홍산교회 건물이 보인다.
홍산교회 정문에서 오른편으로 약 10여m쯤 걸어가면 외리마을 입구를 표시한 바위 이정표가 있다.
홍산교회 입구 맞은편에는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데, 나무들 사이로 오랫동안 돌보지 않아 잔디가 거의 없는 이름 없는 민둥 묘가 있다. 과거 이곳은 말뫼동산이라 부르던 언덕바지였는데, 수년 전에 도로를 넓히면서 예전 풍경을 잃어버렸다고 한다.
예전에 있었다는 말 묘나 여러 기의 묘들이 도로를 넓히는 과정에서 이장이 되는 등 어느 순간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던 것이다.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과거 이곳은 성황당이 있어서 오가는 이들이 무사 안녕을 빌었다는데, 지금은 흔적도 없이 보통의 밭으로 변해 있었다.
홍산교회 뒤쪽에도 예전에는 큰 방죽과 마을이 있었고, 길에서 보이는 매봉재에는 아이들이 다니던 서당도 있었다는데, 현재는 논과 작은 동산이 보이는 정도다.
[마을길 걷기]
내촌버스정류장은 내촌마을 입구에 해당하지만, 그곳으로 들어가면 마을을 반으로 나누어 둘러봐야 한다. 내촌마을은 네 군데의 뜸으로 이루어져 있어 그 중앙으로 들어가기보다는 마을 뒤쪽 길에 해당하는 너머뜸부터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는 것이 좋다.
오래된 소나무 몇 그루가 서 있는 말뫼동산이 끝나는 오른쪽에 마을로 들어가는 작은 길이 보인다. 그 길로 들어가서 약 70여m를 가면 지금은 비어 있는 오래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옛날의 홍산교회 건물이다.
이 홍산교회 건물은 1985년 홍산교회가 길 건너편으로 새로 건물을 지어 옮겨 간 후 그동안 마을 주민이 창고로 사용하다 지금은 거의 방치되어 있다.
1961년에 지어진 건물인데도 마치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작은 소학교 건물을 연상하게 한다.
이곳을 지나서 내려오다 보면 길이 90도 꺾어지는 곳이 나온다. 바로 10여 호 남짓한 집들이 모여 있는 너머뜸이다. 길이 꺾어진 곳에서 동남쪽 방향으로 새로 짓고 있는 축사가 보인다. 지금까지 내촌마을은 가축을 키우지 않는다는 묵계를 통해 청정한 마을을 자랑삼아 왔지만, 이제 몇 가구 남지 않은 마을의 젊은 사람들에게 벼농사만을 강요할 수 없는 것이 지금의 농촌 현실이라고 한다. 노인층이 아닌 젊은 농민들의 경우, 교육과 생활 여건 모두 어려운 현실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변화 과정으로 보인다.
이곳에서 70여m를 걸으면 길이 오른쪽으로 향해진 모퉁이가 나오면서 그리 크지 않은 은행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은행나무 바로 정면이 너머뜸에서 사랑방 구실을 하고 있는 강순례 할머니 집으로, 무더운 여름철에는 동네 할머니들이 더위를 피해 대문 담 그늘에 모여 앉아서 담소를 나누는 장소이다.
또한 추운 겨울에는 아직도 구들이 있어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고구마를 구워 먹으며 논다.
강순례 할머니 집의 담장을 끼고 오른쪽 뒤에는 너머뜸에서 말씀을 재미있게 하시는 진흥댁 할머니가 살고 있다.
[모정 가는 길]
강순례 할머니 집 담을 따라 작은 길을 따라가면, 60여m쯤에 작은 삼거리가 나온다. 그리고 길의 왼편으로 들어서서 50여m쯤 되는 곳에 마을 사람들이 외면하는 모정이 덩그러니 서 있다.
마을 사람들은 원래 큰뜸의 현재 마을회관 2층에 모정을 짓기를 원했지만, 김제시에서 마을 주민이 희사한 지금의 터에 모정을 지었다고 한다.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많은 이곳에서 소매동산에 있는 모정까지는 거리가 너무 멀다 보니, 그곳까지 올라가 쉬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마을을 내려다볼 수 있는 위치에 있어서 좋기는 하지만, 주민들 입장에서는 있으나 마나한 모정이 된 것이다.
모정 뒤로는 내촌마을에서는 유일한 박성균 할아버지네 배 과수원이 길에 늘어서 있는데, 지금은 오래된 배나무들은 뽑아내고 그 자리에 블루베리를 심었다.
[재너머와 큰뜸의 마을회관]
모정에서 왔던 길로 되돌아 나와 강순례 할머니 집 쪽으로 돌아가면 너머뜸과 연하여 정거장댁으로 불리는 양복자 할머니 집과 칠순 농민 마라토너로 유명했던 고 정현모 할아버지가 사시던 집, 일제강점기에 징용을 피하려고 무덤을 파고 들어가서 피신했던 정판규 할아버지 집이 있는 재너머 마을이 나온다.
그곳을 지나쳐 논과 연이어진 재너머 길을 가다 보면 마을회관이 있는 큰뜸이 나온다.
마을회관으로 가는 또 다른 길도 있다. 너머뜸으로 다시 가거나, 재너머를 거치지 않고 모정에서 아래쪽으로 곧바로 200여m를 내려가다 보면 마을회관과 연결된다.
마을회관은 노인회, 부녀회, 청년회관을 겸하며 동네 주민들에게는 실질적인 사랑방 역할을 하는 곳이다.
다른 마을처럼 이곳 내촌마을도 남녀 성비의 차가 커서, 마을회관에는 남성보다 여성들이 훨씬 많이 모인다. 마을회관 안으로 들어가 보면 남성과 여성으로 각각 분리되어 있는 방이 있고, 큰 거실에는 운동 보조기가 하나 놓여 있다.
마을회관 안에는 회관을 건립할 당시 쌀을 희사한 내역이 적힌 마을 주민들의 명단이 현판으로 만들어져 걸려 있다.
남성들의 방에는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서 받은 군민체육대회 우승 트로피가 자랑스럽게 놓여 있고, 벽면에도 일제강점기에 우승한 기념사진이 액자로 걸려 있다.
반면, 할머니들이 출입하는 방에는 별다른 구성물이 보이지 않는다. 바쁜 농사철에도 틈틈이 쉬어 가기는 하지만, 추수가 끝날 무렵에는 어김없이 할머니들이 모여앉아 화투놀이와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이다.
마을회관 바로 옆에는, 마을 소개를 잘해 주시는 이수근 씨가 살고 있는 노인회관 건물이 있다.
노인회관에서는 한때 새마을점포가 운영되기도 했다고 한다.
정문에는 이 건물을 지을 당시의 내역이 적혀 있는 비석이 서 있다.
이곳 큰뜸은 예나 지금이나 마을의 중심부 역할을 하고 있는데, 지금도 옛 노인회관 건물 벽에는 ‘두부 1모에 500원’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다.
[구석뜸과 웃몰]
여름부터 가을까지 대문 입구에 꽃과 큰 조롱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큰뜸의 정인곤 내촌노인회장 댁을 지나면, 농기계들이 늘어서 있는 마을 주차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곳에서 왼쪽으로 나 있는 길로 접어들면, 옛날 슈퍼마켓 자리였던 집과 마을의 대소사를 잘 아는 마을 토박이 강곡례 할머니가 살고 있는 구석뜸이 나온다.
대숲이 보이는 길을 따라 조금 더 걷다 보면 내촌으로 들어오는 큰길과 연결된다. 다시 마을 주차장으로 되돌아 나와서 길옆으로 보이는 큰집이, 과거 20여 명의 대식구 살림을 했었던 여장부 안우상 할머니 집이다.
구석뜸 반대쪽 오른편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주차장 끝에서 70여m를 가면 큰 창고가 있는데, 이 창고가 삼거리의 기점으로, 마을의 초입인 큰길로 나가거나 웃몰[웃멀]로 갈 수 있다.
현재 약 10여 가구 정도가 살고 있는 웃몰의 초입에서 왼쪽 길 끝에 죽산면 조합장과 중대장을 역임했던 이두영 할아버지 집이 있다.
이두영 할아버지 집 뒤쪽을 죽 둘러 마을을 감싸고 있는 듯한 언덕은 과거 동학농민운동군들이 굴을 파고 숨어 있었다고 전해지는 굴잔등이다.
웃몰 초입에서 오른편에 위치한 큰집은 예전에 마을 소년들이 글을 배우던 학당인데, 지금은 학교 교사인 이맹규 씨가 살고 있다.
마을의 일들을 도맡아시피 하는 이정원 씨와 마을 이야기를 자세히 알고 있는 김분순 할머니 집이 그 앞뒤로 이웃하여 있다.
그 옆으로 마당과 연해 있는 신축 건물은 마을 이장 박도균 씨 집이다.
[아리랑 문학마을 조성지]
박도균 이장 집에서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몇 걸음 걷다 보면 일제강점기 만경 일대의 대지주였던 구마모토 공덕비가 길가에 쓰러진 채 방치되어 있다.
웃몰이 끝나는 지점에서 약 250m쯤 떨어진 곳이 아리랑 문학마을 조성 예정지다.
2009년 현재 토지 보상 문제로 공사가 중단되어 있기는 하지만 김제시에서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사업이기에, 과거 큰 장터였다는 홍지뫼 인근까지 규모가 큰 문학마을 공사가 재개될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내촌마을은 4개의 뜸과 아리랑 문학마을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볼거리가 많은 동네로 거듭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