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B0301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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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진 희 |
제비산은 해발고도 300m의 산으로 조선 전기 문신 정여립[1546~1589]이 죽은 후 ‘역모의 땅’이라 불리며 땅을 파헤쳐 숯으로 혈맥을 끊었던 아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산이다.
제비산 기슭에는 길이가 7척, 폭이 3척이나 되는 자연석 하나와 길이 7척, 너비 1척쯤 되는 자연석이 개울을 가로질러 나란히 걸쳐 있다. 다리 머리에는 수령 5백 년이 넘어 보이는 노거수 한 그루가 개울가에 엇비슷하게 누워 있는데 이 다리가 바로 ‘홀어미다리’다. 이 다리에 얽힌 이야기를 문헌의 내용을 토대로 정리해 보았다.
[효심으로 다리를 놓다]
옛날 청도원마을에 한 과부댁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남편과 시부모를 잃고 혼자 힘으로 남매를 어렵게 키웠다. 이를 지켜보는 주변 사람들은 그녀를 ‘여장부’라고도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봄날, 이 여인이 마을 건너 밭에 농사를 지으러 갔다가 어려서부터 같은 동네에서 알고 지냈던 남자를 만나게 된다. 이 남자도 오래전 상처하여 혼자 살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둘은 서로 만나 애틋한 감정이 생기게 되었다. 이후로 두 사람은 다른 이의 시선을 피해 계속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 남자는 개울 건너 언덕바지에 집을 짓고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여인이 그곳에 가려면 개울을 건너야만 했다.
한편, 매일같이 외출을 하는 어머니의 행실을 수상히 여긴 아들은 급기야 어머니의 뒤를 미행하고 모든 정황을 알게 된다. 하지만 아들은 어머니의 행실을 따지기보다는 그간 자식들을 위해 고생해 온 어머니를 측은하게 여겨 오히려 개울을 편안히 건널 수 있도록 징검다리를 놓아 주기로 마음먹게 된다. 아들은 자기 아내와 함께 부근에서 반석을 가져와 어머니가 건너는 개울 목에 다리를 놓기 시작했고, 이후 동네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고는 아들을 효자를 칭찬하며 다리 이름을 ‘홀어미다리’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홀어미다리 이야기를 보면 당시 시대가 과부의 자유연애나 재가를 허용하는 분위기는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사회적 정황과는 별도로, 자녀가 이를 허용하고 적극적인 관용의 태도를 보였을 때는 이를 오히려 ‘효자’로 칭하는 모순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표면적인 사회적 의식과 실제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에서 간극이 관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