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B03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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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진 희 |
신앙생활을 위해서 동곡마을로 들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생계를 이어 나갔을까를 알아보는 것도 중요하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이 마을은 얼핏 봐도 농사지로서는 적절치 않아 보인다. 그리고 동곡마을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이곳은 기본적으로 농토가 부족한 마을이야.”라는 말을 곧잘 듣게 된다.
마땅히 농사지을 땅이 부족해서 그나마 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조금 이루어질 뿐이고, 그러한 형편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바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마을 주민들은 예전부터 특용 작물을 키웠다고 했다.
[돈 버는 재미가 짭짤했지]
동곡마을에서는 한때 생강이 돈 버는 재미를 가져다 줬던 효자 작물이었다. 향신료로 사용되는 생강은 조선시대만 해도 귀한 작물이어서 궁궐에까지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봄에 생강을 쪼개서 감자 심듯 묻어 놓으면 마치 열을 곱한 듯이 여러 개가 튼실하게 매달려 나오니, 토양만 맞으면 규모가 작은 땅에서도 고소득을 보장하는 농작물이었다. 따라서 농사짓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기대했던 것보다 그 이상을 가져다주어서 한때는 생강이 아닌 ‘금(金)강’이라는 말도 나돌았다고 한다.
마을에 생강 농사가 가장 성행했던 시기는 1930~1940년대였다고 한다. 주민들 가운데는 농사지은 생강을 서울로 내다파는 ‘중상’도 있었고, 생강 농사로 큰돈을 만진 덕에 자식들을 마음 편히 가르칠 수 있었던 이도 여럿 있었다.
이후 세월이 흐르면서 주민들은 김치에 들어갈 채소 가격이 비싸게 매겨지면 양념 가격이 하락하게 된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치게 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당시는 지금처럼 김치냉장고와 같은 저장고가 널리 쓰이던 시절이 아니라서 출하 시기를 자유롭게 조절하지는 못했고, 점차 지력이 떨어지면서 연작이 어렵게 되어 이제는 더 이상 생강 농사를 짓지 않게 되었다.
[생강 농사도 다 요령이 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도 주민들은 아직도 어떻게 쪽을 내는지 혹은 어떤 방향으로 심어야 하는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생강 농사를 짓던 주민들의 말을 들어 보면 생강은 보통 4~5월경에 주로 심는다. 먼저 배수와 보수성이 좋은 땅을 선택해서 1.2m 정도의 이랑을 만든 다음 밑거름을 충분히 줘야 하는데, 더운 지역에서 들여온 작물이기 때문에 기온을 높이 해줄수록 잘 자라고 파종을 한 후에는 볏짚이나 신문지 등을 꼭 덮어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수확은 보통 10월 이후에 거두는데, 매운맛이 적은 것이 필요할 때는 8~9월에 수확을 하기도 한다.
[민간요법으로도 쓰였지]
예부터 생강은 감기와 기침에 효과적이고 혈액순환을 원활하게 하고 체온을 높여 주는 효능을 지녀서 민간요법으로 많이 쓰였다. 생강과 대추, 감초를 2:1:1의 비율로 섞어 차처럼 끓여 마시거나 생강을 절구로 찧어 설탕에 잰 다음 얇게 펴 말린 생강과자[편강]는 입맛을 돋우는 식품으로 즐겨 만들어진다.
지금은 주민들에게 생강 농사는 아련한 추억으로 기억되고 있지만 여러 신흥종교의 잔흔이 존재하면서도 그 안에서 다양성과 정체성이 공존하고 있는 동곡마을에 생강 농사가 성행한 것은, 다른 재료를 보완하고 어우러져도 맛과 향을 잃지 않는 생강의 면모를 떠올리면 제법 어울리는 이력이라 생각된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