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B030102 |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진 희 |
입향조는 어떤 마을에 맨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사람 또는 그 조상을 일컫는 말이다. 마을을 창건한 역사가 오래된 경우 막연히 성씨만 구전되기도 하지만 실존한 인물로서 추적이 가능한 경우도 있으며, 때때로 후대인에 의해 마을을 창건한 신 또는 수호신으로 숭배되기도 한다.
촌락 사회, 특히 동성 촌락에서는 입향조를 정점으로 혈연 공동체를 형성하기도 하는데, 여러 동성 집단이 섞여 있는 촌락의 경우에는 입향조를 둘러싼 갈등이 빚어지기도 한다. 즉, 입향조는 마을 혹은 동성 집단의 역사적 배경이자 일종의 상징으로서 그 존재와 인식은 마을 내에서 결속의 주요한 기제로 작동하게 된다.
[안동김씨들의 마을]
동곡마을은 1490년대 중반 안동김씨 일가가 터를 잡고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한다.
당시는 바깥구릿골과 안구릿골로 나뉘어 불렸는데, 바깥구릿골은 1961년 금평저수지를 만들 때 수몰되고 현재는 안구릿골만 남았다.
박태훈[가명] 씨가 동곡마을에 처음 들어왔을 때만 해도 안동김씨가 마을 주민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마을회관에서 만난 이대열[가명] 씨 역시 자신이 동곡마을에 들어왔을 때는, 자신과 같은 타성바지들은 몇 되지 않았고 약 80% 이상이 안동김씨였다고 설명했다.
타성바지들과 안동김씨 간의 표면적인 갈등은 없었다고 대답했으나 실제 이들 간의 경제적인 여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넉넉한 생활을 하고 있던 안동김씨들 중에서 특히 증산 신앙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동곡마을을 찾아온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이들은 강증산[본명 강일순]을 도와 포교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현재 동곡마을에는 안동김씨 일가 제각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으며, 정례적으로 안동김씨 문중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마을 주변의 산 중에는 안동김씨 문중 소유로 되어 있는 토지들이 많은데, 지금도 안동김씨와 관련된 유적을 마을 내에서 찾을 수 있다.
[효자 정문을 내려 받다]
제비산 자락과 금평저수지 사이로 난 길을 약 300m쯤 가면 저수지 가장자리에 위치한 음식점 오른편에 효자 정문이 있다.
김춘 정려인데, 목조 와가로 된 1칸 집으로 정려각 안에는 자그마한 비 1기가 서 있다. 비에는 “효자통운대부행무주현감안동김공춘지여(孝子通訓大夫行茂朱縣監安東金公春之閭)”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김춘의 본관은 안동으로, 다섯 살 때 어머니가 죽고 아홉 살 때 아버지마저 죽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상을 당했을 때는 너무 어려서 상주 노릇을 못 했고, 아버지의 상을 당했을 때도 어렸지만 법도에 맞게 상주 노릇을 잘했다. 외직(外職)을 마치고 돌아와서 어머니의 상 때 상주 노릇을 못한 한을 풀기 위해 3년 동안 여묘살이를 했는데, 이 동안은 부인이 병이 들었다는 말을 들어도 집에 가지 않았다. 또한 여묘살이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서모를 친모와 같이 섬겼다. 이에 지방 향리들이 조정에 상소하여 명종이 벼슬과 이름을 적은 기를 내렸다고 한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