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B0201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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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 657번지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갑표 |
동곡약방 에서 구성산 쪽으로 시냇물을 따라 약 1㎞쯤 올라가면 원불교 원심원이 있다.
이곳은 원불교의 대산종사 김대거(金大擧)[1914~1998년, 본명은 영호(榮灝), 호는 대산(大山)]의 기도와 염원이 어려 있고, 그에 대한 추억이 가득한 곳이다.
원심원의 수도원에는 “圓心圓記 - 九聖山 於口 三神山之下에 擇地定宅하니 壽福 貴福慧 健康으로 無量壽 無量福 無量慧가 陳陳하여 福足足 慧足足할 것이다. 養精, 養身, 養德, 養賢,하고 潛心, 鍊心, 正心하여 以就工夫하면 必得如意寶珠하리로다.” 하는 대산종사가 내린 법문이 지금도 걸려 있다.
종교는 꿈이다. 한 사람이 꾸는 꿈은 세상을 바꾸지 못하지만 모두 같은 꿈을 꿀 때 그 꿈은 현실이 된다. 원심원은 대산종사가 살아생전 임시 법무실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대지면적 555㎡, 건평 165㎡으로 법당 및 요양 시설로 꾸며져 있다. 현재 원심원은 몸이 아픈 이들이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원불교 중앙여자수도원 분원이다.
[약망태 짊어지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원심원에는 대산종사와 관련한 몇 가지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1944년 그의 나이 서른 살 때 폐결핵으로 5개월 동안 죽음의 문턱에서 사투를 벌이게 된다.
이 때 그는 “내가 만약 필요한 사람이라면, 모든 생명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리게 된다. 그런데 잠시 병세가 호전되는 듯했으나 1949년 4월 폐결핵이 재발되자, 그는 이곳 동곡마을로 내려와 요양을 하게 되었다.
이후 대산종사는 오늘은 한 걸음, 내일은 두 걸음, 모레는 세 걸음, 그렇게 조금씩 걸으며 병세를 회복했다. 그러면서 기력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커다란 약망태를 들고 동곡마을 근처의 산과 들을 누비면서 약초를 캤는데, 아무리 많은 약초를 발견했다 해도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하산을 했다.
하루는 약망태를 짊어지고 제비산에 오른 그는 금평저수지를 바라다보며 “옛 원평교당이 저 아래 있었는데 수몰되기 전 원평에서 정양(靜養)[몸과 마음을 편하게 하여 피로나 병을 요양함]할 때 구릿골 일대를 아니 가본 곳이 없었다. 그때는 바늘 하나를 찾을 정도였다.”고 말했다고 전한다. 이렇게 기도와 약초를 캐는 일로 나날을 보내면서 수행하기 위한 거처로 삼기 위해 마을의 몇 가옥을 매입한 곳이 지금의 원심원이다.
원심원 뒷산을 소삼신산이라 부른다. 삼신산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상상의 세 신산이다. 한국에서도 중국의 삼신산을 본떠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을 삼신산으로 일컬었다고 한다. 구릿골의 삼신산은 지리산보다 작은산이라 소삼신산이라 이름붙인 것 같다. 삼신산은 예부터 청학동이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청학동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토피아였던 것처럼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이 이곳 구릿골로 찾아 들어오는 것은 아닐까?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