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A0202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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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광활면 옥포리 화양마을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한천수 |
화양마을 주민들의 생활은 방조제 안쪽 농토에서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논보다 방조제 너머 끝없이 펼쳐진 갯벌에 나가 짠 바닷물과 갯흙을 밟는 시간이 많았다.
쇠스랑처럼 생긴 기구를 이용하여 갯벌을 헤집고, 그물이나 낚시를 던져 걷어 올린 것은 짱뚝[방조제]을 거치면 생활이 되었고, 집으로 들어오면 생계가 되었다.
화양마을 주민에게 갯벌은 황금밭이 되고, 생금밭이 되었다.
[생금밭이 먹여 살렸지]
“광활 사람들은 이 앞의 바다를 ‘생금밭[生金田]’이라고 그랬어요. 그만큼 자원이 풍부했단 얘기예요, 갯벌이. [새만금을] 막기 전에는 정말 황금밭이었어요.
갯지렁이, 백합, 뭐 안 나오는 게 없어요. [갯벌] 가면 그냥 오는 법이 없어, [부부] 둘이 가면 돈 십 몇 만 원씩 버는 게 일이 아니었어요. 바다에 가면 생활비 다 벌어다 쓰고, 애들 가르치고. 그전에는 여기서 한 80%가 바다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바다는 소농가에서 많이 다녔는데, 여름철에 농사일해 놓고 바다 나가는 사람들 많았어요. 여기 사는 사람들 중 바다 안 가 본 사람이 극히 드물 거야. 최락기 씨 아주머니, 그 양반도 바다에서 늙은 사람이여.
새만금이 막혀서 그게[갯지렁이, 백합 등] 다 없어졌어요. 바닥 자체가 썩어서 살들 못해 그런 애들이. 새만금 막기 전에는 뚝 밑에까지 물이 막 넘실넘실 했어. 사리 때는. 근데 지금은 뿌옇게 다 말라 버렸잖아.”[이명순, 1955년생]
“그때는 농사져도 쌀이 나오지 않으니깐. 논 세 필지[3,600평, 11,900.83㎡] 정도 지면 먹고 살기뿐이 못 허고, 하여튼 부업이 없으면 [자녀를] 못 갈쳤지. 여기 갯벌은 생금밭이었어, 날마다 잡아도 생금이 나온게. [갯]지렁이 잡고, 맛 잡고, 생합·백합·꼬막, ‘그렝이’라고 쇠로 만든 것을 갖고 바다로 막 끌고 다녀. 따그락허면 그것이 걸리고 걸리고. 거기 가면은 하루에 쌀 한 짝도 벌고 그렸어. 농사는 지어 가지고 밥만 먹고 살고. 어려웠어요, 그때가.”[조용환, 1935년생]
[드넓은 갈대밭으로 변한 갯벌]
광활갯벌에서는 백합, 맛[조개], 갯지렁이, 망둑어 등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그중 갯지렁이는 낚시 미끼와 화장품의 원료로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하였다. 광활갯벌은 화양마을 주민들이 살아온 땅이고, 현재를 일군 바다 위의 논이었다. 새만금사업 후 광활갯벌에서 어로 활동은 금지되었다.
그리고 해수의 유통이 없어서 갯벌 생물이 살아가기에는 부적합한 땅이 되었다. 지금 광활갯벌은 드넓은 갈대밭이 되었다.
“밤낮으로 바다 아니면 남의 논일이나 댕기고 그랬지. 바다는 40년 넘게 댕겼응게, 예순아홉 살 되드락. [결혼하고] 얼마 안 돼서 새각시 데리고 바다로 같이 댕겼어. 바다 물때, 들어오고 빠지는 시간을 이용해서 가니까, 하루에 두 번썩도 댕겼당게. [갯벌은] 사람이 밟고 다닐 만큼 단단허당게, 잘 안 빠져. 갯지렁이 잡어 갖고는 안 죽지, 그런디 생합 같은 거 멀리 가서 잡다가 죽는 사람도 많아. 우리도 저녁에 배타고 나가서 생합 잡아 오다 몇 번 죽었다 살아났는데, 바다가 무서운 것여.
백합이나 [갯]지렁이, 망둥어[망둑어], 맛도 잡고, 여기 사람들 주로 그렇게 해서 먹고 살았어. [갯지렁이는] 세발 소시랑[쇠스랑] 있어요, 지드란 혀. 그걸로 파. 그러면 [많이] 나올 때는 서너 마리씩 나오지. 그것이[갯지렁이는] 꼭 대그박[대가리]만 잡아야지 다른 데 잡으면 딱 끊어져 버리고. [갯]지렁이는 낚시[미끼]로도 나가고 화장품 원료로 한다고 그런 말이 있었어. 그래 갖고 일본으로 수출하고 [가격이] 비쌌지. 짱둑에[광활방조제에] 가 물건 사는 사람이 있었어. [갯벌에 나가면] 시방 돈으로 한 오만 원썩도 벌고, 쌀 한 가마니 값도 벌고, 근게 [갯]지렁이 잡아서 순전 먹고 살고, 아들 고등학교라도 갈치고 그러지. 부자 되고 이런 건 없었지만 넘의 집으로 돈 꾸러 대니고 이런 지장은 없었어. [지금은] 바다 들어가들 못 혀. [새만금 생긴 후] 못 들어가게 혀.”[최락기, 1927년생·송종섭, 1934년생]
새만금사업은 1991년 방조제공사를 시작하여 2003년 12월 30일 끝막이 공사를 마치면서 세계에서 가장 긴 33㎞의 방조제를 축조하였다. 새만금은 사업 초기에 농지 확보를 목적으로 간척 공사가 진행되었으나 예산, 환경, 사업 타당성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서 간척 공사가 수차례 중지되기도 하였다. 이후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2007년에 새만금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전체 사업 기간은 1991년부터 2020년까지 총 30년으로, 1차 계획[1991~2009년]에서는 새만금 외곽 시설을 정비하고, 2차 계획[2010~2020년]에서는 내부 개발을 완료할 예정이다.
[정보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