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7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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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卵山敎會 |
영어공식명칭 | Nansan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마산1길 32-8[마산리 34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용엽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마산리에 있는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교회.
[개설]
1907년 박윤성에 의해 설립된 교회로서 일제강점기에는 민족교육은 물론, 신사참배 등 항일활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이후에는 민주화투쟁에도 참여하였는데, 1962년 난산교회의 목사로 부임한 강희남은 박정희 유신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옹호하였으며, 이 일이 화근이 되어 여러 차례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
[변천]
난산교회의 설립자 박윤성은 전라북도 김제시 백구면 난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으며, 선교사 최의덕을 만나 전주 서문교회를 다니다가 1907년 자신의 재산 일부를 교회에 헌납하여 교회당을 신축하였다. 1922년 전주선교부가 운영하고 있는 전주 성경학원 건물 도면 그대로 교회당을 신축하였다.
같은 해 백구면 일대 청소년들의 교육을 담당하기 위해 신광학원을 설립하여 신문명 교육에 힘을 기울였다. 이때 난산교회에서는 교회의 재정 일부와 장로 박윤성의 희사금으로 교실 네 칸을 지어 교회에 헌납하였다. 4년제 과정의 학교였지만 이 학교와 교회를 통해 지역 사회에 많은 일꾼들이 양성되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중일 전쟁 이후 농촌에 있는 학교에서까지 신사 참배를 반대하였으며, 이 일로 학교는 문을 닫게 되었다. 이후 백구면 유강리의 김치문[치문초등학교의 설립자]이 학교를 인수하여 공립 난산초등학교를 설립하였다. 이후 1962년 목사 강희남이 부임하면서 기독교 박애주의 바탕 위에서 난산교회를 이끌어 갔다.
[활동사항]
난산교회는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 거부 등의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유신시대에는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현황]
난산교회는 전주에서 익산으로 가는 국도 오른쪽으로 도로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언덕에 서 있는데, 건물은 붉은 벽돌로 지어져 있다.
[의의와 평가]
난산교회는 일제강점기에는 신사참배 거부 등 항일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유신시대에는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는 등 한국 교회사에서도 민주화 발전에 많은 기여를 한 교회로 주목받아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