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7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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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陽洪氏 |
영어의미역 | Namyang Hong Clan |
분야 | 성씨·인물/성씨·세거지 |
유형 | 성씨/성씨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리 |
집필자 | 김병학 |
[정의]
홍은열을 시조로 하고, 홍주를 입향조로 하는 전라북도 김제시 세거성씨.
[연원]
남양홍씨(南陽洪氏)의 선시조는 8학사(八學士) 중의 한 사람으로, 고구려 영류왕 때 당나라에서 건너온 홍천하(洪天河)이다. 선시조 학사공 이후의 계대가 확실하지 않아, 고려 태조를 도와 삼한 통합에 공을 세우고 고려 개국 일등공신이자 삼중대광태사를 지낸 홍은열(洪殷悅)을 시조로 하고 있다.
[입향경위]
입향 경위와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며 다만, 시조 홍은열의 22세손 홍주(洪澍)가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리에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현황]
홍주의 후손들이 김제시 백산면 상리 두동에 세거(世居)하고 있다. ‘두동(頭洞)’이라는 지명은 ‘두멀’이라고도 부르는데, 500여 년 전 남양홍씨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여 형성된 이 마을에는 평소 덕을 베풀고, 부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섬겨 나라에서 벼슬과 정문(旌門)을 받은 홍수벽(洪壽壁)·홍관효(洪寬孝)·홍재우(洪在禹) 등이 살았다. 이에 따라 그 후손들이 ‘웃어른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으로 머리 ‘두(頭)’자를 써서 ‘두동’ 혹은 ‘두멀’이라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뜻이 다른 말 ‘두(斗)’자를 써 ‘두동(斗洞)’으로 적었다고 한다. 후손으로는 시조 홍은열의 23세손으로 첨지중추부사를 지낸 홍남(洪楠), 홍주의 4세손으로 공조참의를 지낸 홍태고(洪泰高)를 들 수 있다.
[관련유적]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리 두동에 효자 홍수벽 정려(孝子洪壽壁旌閭)와 효자 홍관효 정려(孝子洪寬孝旌閭), 효자 홍재우 정려(孝子洪在禹旌閭)가 있다. 홍수벽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온순하고 효성이 지극하여 어버이를 섬기되 하늘이 감동할 만큼 남달라 유생들이 천거하여 1816년(순조 16)에 정문이 세워졌다.
홍관효는 13세 때 어머니의 병환에 약을 구하여 급히 돌아오는데, 갑자기 천둥이 치고 폭우가 쏟아져 다리가 무너지고 냇물이 불어나서 도저히 건널 수가 없게 되자, 소를 구하여 그 꼬리를 잡고 냇물을 건넜다. 그 후 아버지가 병석에 있을 때는 추운 겨울 얼음판에서 잉어를 얻어 병간호를 하였다. 아버지 상을 당해서는 왕복 150리나 되는 곳을 걸어 하루도 빠짐없이 성묘를 하였는데, 때로는 어두운 밤에 오는데 호랑이가 인도해서 집까지 온 적도 있다고 한다. 이 소문을 들은 조정에서는 암행어사로 확인하게 한 뒤 정문을 내렸다.
홍재우는 할아버지 홍수벽과 아버지 홍관효의 뜻을 받들어 부모를 섬김에 있어 정성을 다하고 흐트러짐이 없어 가까운 마을 사람들로부터 큰 효자라고 찬사를 받았다. 이에 지방 유림들이 추천하고 관찰사가 임금에게 아뢰어 1870년(고종 7)에 정문을 세우도록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