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7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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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立石山-臥石山- |
영어의미역 | Duel between Ipseok Moutain and Waseok Mountai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장산리 |
집필자 | 이윤애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청하면 장산리에서 입석산·와석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입석산과 와석산 싸움」은 청하면 장산리에 위치한 입석산(立石山)과 와석산(臥石山)의 생김새 때문에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산악전설이다. 힘이 센 장수가 서로 힘자랑을 하며 싸우다가 수바위는 장수처럼 우뚝 서 있다고 해서 입석산이 되었고, 암바위는 싸움에 져서 누워 있는 형상으로 와석산이 되었다고 하는 지명유래담이다.
[채록/수집상황]
김제 지역의 향토학자 정진형이 채록한 이야기이다. 그 내용은 전라북도 문화관광정보[http://www.gojb.net]의 전통문화 항목에 실려 있는데, 이는 김제시 문화관광과에서 제공한 정보이다.
[내용]
아주 먼 옛날 힘이 센 장수가 암바위와 수바위에 살고 있었다. 두 산의 거리는 약 1㎞ 정도였다. 이 두 장수는 힘이 비슷해서 여러 차례 힘겨루기를 해도 그 자웅을 가리기가 힘이 들었다. 그런데 이들은 서로 힘겨루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정당한 방법으로 승부를 가리기 위해서 암바위와 수바위 중간 지점에 있는 팽나무 밑에서 힘을 겨루기로 약속을 하게 되었다.
이 때 수바위 장수는 자기의 걸음 거리로, 암바위 장수는 소변으로 힘겨루기 할 것을 결정했다. 두 장수가 힘겨루기 내기를 한 결과 수바위 장수는 자기의 발걸음으로 4~5㎝ 정도의 자국을 남기게 되었고, 암바위 장수는 겨우 소변 자리만 남게 되었다. 물론 결과는 수바위 장수의 승리로 돌아가게 되었다. 내기에서 승리한 수바위 장수는 우뚝 서 있게 되었고, 암바위 장수는 싸움에 져서 바위가 되어 누워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 이후로 수바위는 입석산, 암바위는 와석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도 두 장수가 힘겨루기를 했던 팽나무 밑에 있는 바위에는 4~5㎝ 깊이의 수바위 장수의 발자취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모티프 분석]
「입석산과 와석산 싸움」의 주요 모티프는 ‘수바위 장수와 암바위 장수의 겨룸’이다. 「입석산과 와석산 싸움」은 민간신앙과 산의 생긴 모양을 통해 바위 명칭에 남성과 여성적 특성을 부여하여 그 이름이 지어진 연유를 알게 해주는 지명유래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