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7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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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碧骨堤碑銘-保存 |
영어의미역 | Preservation of the Epitaph for Byeokgolje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이윤애 |
성격 | 비석전설|유래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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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 | 초동|동네 노인|신령 |
관련지명 | 신털미산 |
모티프 유형 | 비석의 저주|잘 낫지 않는 상처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벽골제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벽골제 비명의 보존」은 부량면 신용리의 벽골제농경문화박물관 옆에 위치한 벽골제비(碧骨堤碑)에 얽힌 비석유래담이다. 벽골제비는 벽골제 사적과 개보수 상황을 기록하여 새긴 것으로 1959년 벽골제와 함께 사적 제111호로 지정되었다. 1975년 제1차 벽골제 발굴조사 작업이 시작되어 문헌에 나타난 연대와 안장(岸長), 규모 등을 입증해 주었고, 문헌에 없는 것들도 고증하게 되었다.
벽골제비의 복원 작업은 고대 농경문화의 상징으로서의 필요성 때문에 실시되었다. 신털미산이 개인 소유이고, 사적비가 묘소 정면에 있어서 건물을 세울 수 없게 되자 중앙문화재위원들과 관계 당국자들이 현지를 답사하여 심사한 결과 불가피하게 장생거(長生渠)가 있는 제방 위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런데 백제문화권 개발의 일환으로 1980년 벽골제 유적 정화공사에서 이를 다시 옮기게 되었다. 그 이유는 제방의 원형을 찾고 가꾸고자 제방에 설치해 놓은 모든 시설물을 이전한다는 당국의 지시에 따라 현재의 위치에 자리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비문의 전면 내용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전해지고 있고, 뒷면 비문 내용은 마멸된 상태에서 탁본으로 떠서 참고 자료편에서 전면 비문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채록/수집상황]
김제 지역의 향토학자 정진형이 채록한 이야기이다. 그 내용은 전라북도 문화관광정보[http://www.gojb.net]의 전통문화 항목에 실려 있는데, 이는 김제시 문화관광과에서 제공한 정보이다.
[내용]
벽골제비의 석질은 본디 청람색(靑藍色)의 마석(磨石)이었다. 따라서 인근 마을의 나무를 베던 아이들이 수시로 이 비석에다 낫을 갈곤 하였다. 이런 일로 인해 비석이 많이 상처를 입게 되자, 계속 비석에 손상이 갈 것을 염려한 마을의 한 노인이 “간밤 꿈에 신령님이 나타나서 ‘이 비석에다 낫을 갈다가 상처를 입으면 오래도록 낫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는 말을 마치고 돌아갔다. 마침 이런 일이 있은 후, 한 초동이 낫에 상처를 입게 되었는데 오랜 시간이 가도 잘 낫지 않으므로 그 때 이후로 사람들이 노인의 말을 새겨듣게 되었다. 이후로 이 비석에다 낫을 가는 일이 사라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벽골제 비명의 보존」의 주요 모티프는 ‘비석의 저주’, ‘잘 낫지 않는 상처’ 등이다. 이 전설은 벽골제비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서 동네의 뜻 깊은 한 노인이 만들어 낸 가설적인 이야기가 주효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벽골제 비명의 보존」은 「피 흘리는 비」에 나타난 저주의 내용과 비슷하다. 「피 흘리는 비」는 개인적인 욕심으로 비석을 자기의 담 안에 두었다가 그로 인하여 비가 피를 흘리면 우물에 핏빛과 같은 녹물이 흘러나올 뿐만 아니라 원인 모를 교통사고가 발생하는 등 이상한 일이 생겼다고 하는 신이담이다. 「벽골제 비명의 보존」은 무지한 사람들의 소행에 일침을 가하는 교훈을 담은 비석전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