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7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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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飛車 |
영어의미역 | Flying Wagon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윤애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부량면에서 비거(飛車)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하늘을 나는 비거」는 부량면 명금산 아래에서 살았다고 하는 정평구(鄭平九)[1566~1624]의 활약상을 담은 인물전설이자 비거를 제작했다는 발명담이다. 정평구는 조선시대 선조(宣祖) 때의 인물로서 세계 최초로 비행기를 발명한 것으로 전해진다. 신경준(申景濬)[1712~1781]의 『여암전서(旅庵全書)』 책차제(策車制), 임진왜란에 대한 일본 측 기록인 『왜사기(倭史記)』, 이규경(李圭景)[1788~1856]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 등에서 비거에 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특히 이규경은, “강원도 원주 사람이 비거에 관한 책을 소장하고 있고, 이 비거는 4명 정도를 태울 수 있으며, 모양은 따오기[혹은 고니]와 같으며, 배를 두드리면 바람이 일어서 공중에 높이 떠올라 백장(百丈)을 날 수 있지만 양각풍(羊角風)이 불면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광풍(狂風)이 불면 추락한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평구가 발명했다고 하는 비거는 서양의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보다 300년이 앞선 발명품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기록된 내용을 살펴 볼 때 오늘날의 행글라이더와 같은 것으로 추정된다.
[채록/수집상황]
1923년 광문사에서 출판한 『조선어문경위(朝鮮語文經緯)』에 “정평구는 조선의 비거 발명가로 임진왜란 때 진주성이 위태로울 때 비거로 친구를 구출해 삼십 리 밖에 내렸다.”고 쓰여 있다. 현대에 와서는 동래정씨 후손인 김제 지역의 향토학자 정진형이 채록하였다.
[내용]
김제 제월리 명금산 아래 살았던 정평구는 어려서부터 천재로 소문이 났다. 병법, 축지법에 능통하여 1591년(선조 24) 무과에 급제해서 비거를 발명하고, 1592년 진주성 싸움에서 외부 연락 및 아군 보급용으로 사용하여 큰 공을 세웠다. 손재주가 많고 꾀가 많은 정평구는 임진왜란 당시 진주읍성이 왜적에게 포위당했을 때, 평소의 재간으로 비거를 만들어 타고 진주성 안으로 들어가 친구를 태우고 삼십 리 성 밖에까지 피난시켰다.
비거에는 4명을 태울 수 있었는데, 모양은 따오기[혹은 고니]와 같은 형이었다. 배를 두드리면 바람이 일어서 공중에 떠올라 백장(百丈)을 날 수 있고, 양각풍(羊角風)이 불면 앞으로 못 나가고 광풍이 불면 추락했다. 비거는 날개를 떨치고 먼지를 내면서 하늘로 올라가 뜰 안에서 산보하듯이 상하 사방을 여기저기 마음대로 날아다니면서 상쾌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비거는 솔개와 같이 만들었는데 양쪽에 날개를 붙이고 그 안에 틀을 설치하여 사람이 앉게 했다. 물에서 목욕하는 사람이 헤엄치는 것처럼, 자벌레나방이 굽혔다 폈다 하는 것처럼 해서 바람을 내면 날개가 저절로 떠올라가고 잠깐 동안에 천리를 날아다니는 기세를 발휘했는데, 마치 큰 붕새가 날아다니는 것 같았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하늘을 나는 비거」의 주요 모티프는 ‘비거를 발명하여 진주성 싸움에서 공을 세운 정평구’이다. 정평구는 소싯적부터 천재이면서 손재주가 많은 사람으로 비거를 제작하여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왜적에게 포위당했을 때 진주성에 갇힌 친구를 구출하였다는 모티프를 가지고 있는 임진왜란 전설이다. 2000년 12월 공군사관학교의 비거복원팀이 이 비거를 복원하여 실험을 했는데, 흡사 거대한 독수리가 사람을 잡아채 날아가는 모습으로 지금의 패러글라이딩과 닮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