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699 |
---|---|
한자 | 饌盒 |
영어의미역 | Side-dish Box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집필자 | 이정주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반찬을 여러 층의 그릇에 담아 포개어 간수하거나 운반할 수 있게 만든 용기.
[개설]
찬합은 주로 목재를 짜서 옻칠하여 수분의 침투를 방지하게 되는데, 대나무쪽을 잇대어 엮은 죽합(竹盒)이나 박목판(薄木板)으로 짠 구조 위에 등나무 줄기로 엮어 만든 등합(藤盒)도 그 나름의 장점이 있어 더러 쓰였다. 재료는 대·버들·백자·나무·놋쇠·은 등으로 만들었으며, 또한 쓰다가 못쓰게 된 한지를 모아 두었다가 만들기도 하였다.
한지로 찬합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지를 물에 3~4일씩 담가두면 부드럽게 풀린다. 이것을 건져 물기를 뺀 다음 풀을 쑤어 종이에 붓는다. 풀이 잘 배었을 때 방망이로 쳐서 마치 종이를 갠 것처럼 만든 다음 집안에서 쓰는 함지 외면에다 두께가 2㎝가량 되도록 곱게 뭉쳐서 형을 뜬다. 그런 다음 바싹 말랐을 때 함지를 떼고 모양을 매만져서 콩땜을 한다. 콩땜은 날콩을 갈아서 들기름을 섞어 만든 것으로 그릇의 안팎으로 흠뻑 묻힌다. 이렇게 만든 종이 그릇은 대를 물려도 상하지 않을 정도로 견고한 것이었다.
[연원 및 변천]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나 『진찬의궤(進饌儀軌)』 등 곳곳에 ‘왜찬합(倭饌盒)’이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현재 전하고 있는 찬합의 형식은 이 무렵을 전후하여 일본에서 들어와 정착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조선시대 말기에는 토착적인 형식으로 제작되었지만, 19세기 초반의 기록에 일본제의 우수성을 인정하였고, 마감 도료로서 청록황주칠(靑綠黃朱漆)·금칠(金漆)과 화훼나 화접 문양 등을 들고 있음을 볼 때, 이 무렵에 수입된 일본제 찬합이 수요층의 일부에서나마 공공연하게 제작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형태]
원형 또는 방형으로 만들며 내부에 칸이 구획된 것과 간수하기 편하고 3~5층을 포개고 이것을 다시 목궤에 넣어서 운반하기에 편리하도록 만든 것이 있고, 서랍 몇 개를 포개어 바로 들 수 있게 제작한 것이 있다. 서랍을 궤에 담는 일반 형식은 궤의 앞면이나 옆면에 상하로 긴 한 두 줄의 투공을 내어 내장된 서랍이 밖에서 보이도록 하고, 문판은 위에서 밑으로 내려 끼워 닫게 된다. 조선 후기에는 휴대하기 편하도록 손잡이가 달린 나무통에 찬그릇·술잔·술병까지를 함께 포개어 넣을 수 있는 들놀이용 찬합이 사용되었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찬합은 목제 용기에 물기 있는 반찬을 직접 담아야 하기 때문에 피막을 형성하는 도료로서 방수·방충은 물론 식품의 부패를 지연시키는 특징을 지닌 옻칠이 필수적으로 쓰인다. 술안주 등 마른 반찬을 담는 찬합의 경우에는 기름칠한 예도 눈에 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