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6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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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喪禮 |
영어의미역 | Funeral Rites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집필자 | 문이화 |
[정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에서 사람이 죽었을 때 장사 지내는 예법.
[개설]
상례(喪禮)는 한 사람의 죽음을 맞이하여 그 주검을 거두어 땅에 묻기까지의 절차를 말한다. 유교적 윤리 관념이 철저하였던 우리나라에서는 부모에 대하여 효도를 다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라 생각하였다. 따라서 부모에 대한 상례는 최대한의 예를 갖추고 엄숙하게 치러야 했다. 주희(朱熹)의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에 의거한 상례의 절차는 ‘돌아가심’부터 ‘상복을 벗기’까지 약 26개월에 걸쳐서 이루어지며, 관례·혼례·상례·제례 중에서 가장 중시 여기는 의례이다.
[절차]
상례의 절차는 임종에서부터 매장에 이르기까지, 초종(初終)→ 염습(殮襲)→ 소렴(小殮)→ 대렴(大斂)→ 성복(成服)→ 장례(葬禮)→ 우제(虞祭)→ 졸곡(卒哭) 등 8단계에 걸친 복잡한 절차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세부적인 것은 훨씬 더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되면서 집에서 상례를 치르는 집은 거의 사라졌으며, 대부분 병원 영안실이나 장례식장에 빈소를 차려 놓고 상례를 치르게 되었다. 과거와 같은 상복도 사라졌다. 이제 3년 동안 상복을 입고 있는 경우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김제 지역에서도 전통적인 상례절차대로 치러지는데, 상례의 절차를 간단하게 살펴보며 다음과 같다.
1. 초종
사람이 죽으면 시신이 굳기 전에 수족을 바르게 펴고, 혼을 부르는 초혼(招魂)을 한다. 상주를 세우고, 호상을 세우며, 자손들은 머리를 풀고 곡을 한다. 호상의 이름으로 죽음을 알리는 부고(訃告)를 보내고, 소나무로 관을 짜는 등 장례준비를 한다.
2. 염습
시신을 깨끗이 씻고 수의(壽衣)를 입히는 습(襲)을 한 후에 반함(飯含)이라 하여 시신의 입에 불린 쌀이나 동전 등을 넣어 주어 노자에 쓰라고 한다. 영좌(靈座)를 설치하고 혼백을 모신다.
3. 소렴과 대렴
돌아가신 첫째 날에 염습을 한 후, 둘째 날에 시신을 베와 이불로 싸서 처음으로 묶는데 이를 ‘소렴’이라 한다. 이때 상주(喪主) 이하 모두는 곡(哭)을 한다. 소렴이 끝난 다음 날에는 시신을 큰 이불로 싸서 묶고 임시로 관을 만들어 입관하는 의식인 ‘대렴’을 한다.
4. 성복
입관이 끝나고 나면 망자와의 관계에 따라서 복을 입는데, 남자와 여자가 다르게 입었다. 망자와의 관계가 가까울수록 거친 복을 마련하여 입었다. 오랜 기간 동안 복을 입었으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예는 거의 지키지 않는다.
성복을 하고 나면 조문을 받았으며, 성복전에는 상주에게만 인사하고 시신에는 절을 하지 않았다.
5. 장례
시체를 지하에 매장하는 절차를 말한다. 우선 장지와 장일을 정하고, 관이 묻힐 광(壙)을 파는 일을 마친다. 발인 하루 전에 관을 빈소에서 대청으로 옮긴 뒤 전(奠)을 올리고 곡을 한다. 발인제(發靷祭)란 망자가 묘지로 향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전을 올리는 절차로써, 이것이 끝나고 나면 관을 상여에 싣고 장지로 향한다.
상여가 장지로 가는 도중에 길가에서 노제(路祭)를 지낸다. 상여가 장지에 도착하면 시신을 매장한다. 이후에는 고인의 신주나 사진을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 빈소에 영좌를 모시고 곡을 한다.
6. 우제와 졸곡
망자를 지하에 묻었으므로 그 영혼이 방황하지 않도록 고인을 위로하기 위해 세 번의 제사를 지내는데, 이를 우제라고 한다. 고인이 죽은 지 100일이 지나면 아침에 곡을 끝마치는 졸곡을 하고, 그 다음 날 고인의 신주를 사당에 모시는 부제(祔祭)를 지내며, 이후부터는 사당에서 아침과 저녁에 제를 올리게 된다. 그리고 망자가 죽은 지 1년이 되면 소상(小祥), 2년이 되면 대상(大祥)을 지낸다. 대상 후 두 달이 지나면 담제(禫祭), 담제 한 달 후에 사당에 신주를 고쳐 쓰는 제사인 길제(吉祭)를 지내고나면 상주와 근친들은 비로소 복을 벗고 평상시의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다.
[현황]
김제 지역은 전통적인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농촌사회였기 때문에 위와 같은 절차로 상례를 치르는 것이 해방 이후 한동안 지속되어 왔다. 그러나 근래에 들어와서는 그 절차가 매우 간소화되었다. 특히 삼우제 이후의 절차는 거의 생략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여와 같은 상장용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오래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