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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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立石堂山祭 |
영어의미역 | Ipseok Dangsan Ritual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의례/제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 |
집필자 | 백덕규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입석동에서 매년 음력 1월 15일에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입석 당산제는 음력 정월 대보름날에 마을 사람들이 재앙을 막고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지내는 마을 공동의 제사이다. 입석[선돌]은 길쭉한 자연석이나 커다란 돌을 일부만 다듬어 똑바로 세운 기념물 또는 신앙 대상물을 지칭한다. 입석동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이 입석은 마을의 당산으로 수호신 기능을 하여 재앙을 막아 주고 풍년을 기원하는 대상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당산제를 지낸 뒤 남녀로 편을 나누어 줄다리기를 하는데, 여자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믿고 있다. 줄다리기가 끝난 뒤에는 사용한 동아줄을 입석에 감아 두는데, 줄에 손을 대면 불행이 생긴다 하여 다음 제사가 있는 1년 동안 손을 대지 않는다고 한다.
[연원 및 변천]
입석을 세운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삼국시대부터 입석에 대한 당산제가 시작된 걸로 추정된다. 이는 백제 초기에 벽골제를 완성하고 기념으로 입석을 세워 놓은 것으로 전해 내려오는 기록으로 알 수 있다. 매년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벽골제를 완성한 후 기념비를 세우고 나서 지금까지 줄다리기를 행하여 왔다고 전해 오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입석은 1974년 9월 27일 전라북도 민속자료 제7호로 지정되었다. 마을 입구에 세워 재앙을 막아 주는 수문신이며, 풍농과 평안을 지켜 주는 수호신이다. 입석은 자연석인 화강암으로 사각 두리기둥이며, 윗부분보다 아랫부분이 조금 굵다. 석주의 높이 210㎝, 위 둘레 140㎝, 아래 둘레 200㎝ 정도의 규모로 되어 있다.
[절차]
해마다 정월 대보름날 보름달이 동녘에 떠오르면 입석 줄다리기가 시작된다. 입석 줄다리기와 당산제 경비로 사용하기 위해 정초에 농악대가 농악을 치며 마을의 집집마다 지신밟기를 해주며 희사금을 받는다. 마을 주민들은 모아진 볏단으로 입석 줄다리기에 사용될 동아줄을 만들게 된다. 여러 개의 동아줄을 모아 남성 줄과 여성 줄을 큰 나뭇가지에 걸어 놓고 만들어 나간다. 입석에 감아 있는 묵은 동아줄은 정월 대보름날 아침에 풀어내고 주위를 깨끗이 청소한다. 일 년 중 이 날만 입석에서 동아줄이 없는 날이 되는 것이다. 입석 줄다리기는 보름달이 떠오르면 제주의 선포로 시작된다. 모든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으며, 마을 대항이 아닌 남녀의 대결로 줄다리기를 한다. 여자가 이겨야 그 해 풍년이 든다고 하여 여자들이 계속 이겨 왔다고 한다.
줄다리기가 끝이 나면 동아줄을 입석에 감아 둔다. 입석에 동아줄을 감고 이 입석 앞에서 당산제를 지내게 된다. 입석 앞에 제사상을 차리고 단헌, 유축으로 제사를 올린다. 한 해 농사가 풍년이 들고 마을이 무사하게 한 해를 보낼 수 있도록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부대행사]
제사 전에는 마을 대항이 아닌 남녀의 대결로 줄다리기를 하며, 제사가 끝나면 모든 사람들이 농악과 함께 어울려 춤을 추며 밤을 지새운다.
[현황]
김제시 입석동에 있는 월촌동주민센터 앞의 김제~부안 간 29호선 도로 길가에 있는 커다란 입석이 원입석이다. 이 원입석 앞에는 자동차의 왕래가 빈번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여 줄다리기를 할 수가 없었다. 따라서 1991년 12월에 이 입석과 쌍을 이루어 마을의 번영을 기원하고 옛 민속을 오래도록 보존하려는 뜻에서 원래의 입석으로부터 북으로 200m 거리에 또 하나의 입석을 세웠다. 그리고 그 옆에 기념비를 세웠다. 앞면에는 기념비문이, 뒷면에는 줄다리기 노래가 새겨져 있다. 또한 당산제를 지내는 제단도 만들어 놓았다. 현재 입석 당산제는 김제시의 지원으로 보다 큰 행사로 자리를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