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57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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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民間信仰 |
영어의미역 | Folk Belief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집필자 | 박진화 |
[정의]
전라북도 김제 지역의 민간에서 오래전부터 믿어져 내려온 신앙.
[개설]
민간신앙은 서민층에 전승되는 자연발생적 신앙으로 뚜렷하게 교조가 없고 경전처럼 체계화된 교리도 없다. 대부분 자연 종교적이며 주술적인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민간신앙은 오랜 전승 과정을 통해 민간의 생활에 존속해 오면서 특정 민족의 기층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유교·불교·도교 등의 외래 종교가 토착화되는 과정을 통해 끊임없이 충돌하고 갈등하는 과정을 거침으로써 중층적 구조를 이루어 왔다.
[김제의 민간신앙]
1. 마을제의 개념
우리 선조들은 옛날부터 기쁨과 슬픔을 같이 하고 신을 숭상하며 마을의 단합을 위해 마을제를 행하여 왔다. 마을제는 생활의 터전이 같은 사람들끼리 병마와 재해를 면하고 행복을 구하기 위하여 주민 전체가 모두 한마음으로 정해진 날짜에 마을의 수호신께 제사를 올리는 전통적 신앙생활의 하나이다.
2. 대상 및 방법
제사의 대상은 산천(山川), 성황(城隍) 등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섬긴다. 마을 근처에 신단(神壇) 또는 신목신당(神木神堂)을 설치하고 신성한 곳으로 정하여 제신으로서 뿐만 아니라 마을의 재난을 막아 주고 오곡의 풍요를 베푸는 신으로 믿으며 숭상하여 왔다.
제사 방법으로는 지연으로 맺어진 마을 사람 전체가 공동으로 제사를 모시는 방법과 마을 사람이 선정한 대표가 제주(祭酒)로서 제사를 주관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다. 제주는 마을에서 신망이 두텁고 덕을 쌓아온 중년 이상의 어른 중에서 마을 사람의 합의 하에 정하였다. 특히 제주는 신의 일을 돌보기 위해 부정을 절대로 금하고 있어 집안에 출산·사망 등의 부정이 없는 사람이어야만 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선정된 제주를 제관(祭官)이라 한다.
3. 제관
제관이 선정되면 제관과 제신(祭神)의 운수가 합치하는 날을 정하거나 고정적으로 정해진 날을 제사일로 하여 그 제사일 3일 내지 7일 전부터 제사 기간이 시작된다. 이 기간 동안 제관은 부정을 하여서도 보아서도 안 되며, 목욕을 하고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물론 주민도 근신의 뜻을 표한다. 신역(神域)에 모래를 깔고, 청소를 하고, 금줄을 친다. 외출을 한 사람은 제사가 끝날 때까지 집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는 등의 제한을 지키도록 하며, 외래자에 대한 출입을 제한하기 위하여 마을의 출입구에 금줄을 치기도 한다.
제관은 제사에 앞서 제물(祭物)과 축문을 준비하는데, 제물의 보관은 부정을 막기 위해 타인이 출입하지 않는 제관의 집을 택한다. 또한 조리에 사용할 물이 공동우물일 경우 우물가에 금줄을 치고, 일시 타인들의 사용을 금지시킨다. 제물은 술, 마실 것, 떡, 과일, 야채 등을 사용한다.
4. 시간
제사 지내는 시간은 초저녁이나 한밤중을 택한다. 이는 부정을 막기 위한 방법으로 사람이나 가축 등이 잠든 뒤의 시간을 택하는데, 곳에 따라서는 낮에 행사를 하는 곳도 있다. 이때에는 제단(祭壇) 위에 천막을 치고, 제단의 반대 방향에는 병풍을 세운다. 이는 날짐승, 낙엽 등의 부정과 바람, 먼지 등을 방지하여 제물을 깨끗이 하고자 함이다.
5. 절차
제사의 절차는 신위(神位)를 모시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대부분 위패를 모셨으나, 위패가 없는 경우에는 신목(神木)에다 종이[백지]를 붙이거나 포를 둘러 신의 몸체로 한다. 제단만 있는 곳에서는 수척(尺)의 지패(紙牌)에 신의 이름을 써서 기(旗)처럼 세우기도 한다.
이러한 신위 앞에 제사상을 차려 놓고 제관은 향을 피우고 술을 부어 강신(降神)한다. 이어서 3헌관(獻官)에 의해 초헌(初獻), 아헌(亞獻), 종헌(終獻), 천진(薦進), 독축(讀祝)의 순으로 제사가 진행되어 축문 낭독이 끝나면 이 축문을 불사르고 제사를 끝낸다. 그런데 이 축문을 불사를 때 재가 남김없이 모두 상공으로 올라가면 부락의 소원이 신에게 통하였다고 하여 제사 참여자들은 만족을 느끼며, 그 반대 현상이 일어나면 운이 나쁘다 하여 그 해에는 근신의 생활을 했다고 한다.
또한 제사가 끝나면 그 자리에서 제관은 물론 참례자들에게도 제물을 나누어 음복을 한다. 왜냐하면 신역(神域)에서의 음복은 마음을 깨끗이 하고 액땜을 할 수 있으며, 행복의 혜택도 받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6. 비용
제사의 비용은 제물을 준비하는데 큰돈이 들지 않으므로 마을의 각호에서 부담하여 각출한다. 거출방법은 제사일의 3~4일 전에 농악을 울리고 지신밟기를 하며 동네 가가호호를 순회하면서 각 집마다 생활 정도에 따라 자율적으로 희사 받았다. 이러한 방법의 제사비용 모금은 온 마을을 축제 분위기로 이끌어 마을의 유일한 연중행사가 되게 한다. 마을 전체 주민이 즐거운 마음으로 서로 돕고 협동하는 단합의 계기가 된다고 한다.
7. 제명(祭名)과 제신명(祭神名)
마을의 명칭은 옛날에는 마을을 리동이라고 했기 때문에 리제(里祭) 또는 동제(洞祭)라고 부르는 것이 자연스런 칭호이다. 자연마을은 리나 동에 비해 가장 작은 단위 마을이므로 마을제라고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방제의 이름을 살펴보면 동제·성황제·산신제(山神祭)·당산제(堂山祭)·산천제(山川祭)·산제(山祭)·동신제(洞神祭)·당제(堂祭)·천제(天祭)·이사제(里祀祭)·정제(井祭)·수신제(水神祭)·여제(厲祭)·장승제 등 많은 종류가 있다. 김제 지역의 경우에는 주로 당산제가 많이 행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제의 주요 당산제]
1. 난봉리 당산제
김제시 난봉동 난산마을 당산제는 신년을 맞이하여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밤 자시에 마을 전체에 액운과 질병을 없게 하고 풍년이 들게 하며 일 년 동안 만사형통을 기원하였다. 이를 통해 마을 사람들의 협동과 단결의 계기가 되었다. 제사 비용은 구정 초부터 마을 전체 가가호호를 농악대를 앞세우고 지신밟기를 하며 방문하여 희사금을 거두어 충당하였다.
이곳 당산제의 특징은 여자들로만 제한된다는 점이다. 마을에서 가장 정숙하고 부정이 없는 중년 여성을 제관으로 내세우며, 마을의 여성들만 참가할 수 있다. 이곳은 옛 백제성이었던 도리봉 성지로서 김제 지방에서는 대표적인 백제시대 태머리식 산성의 성터가 유일하게 남아 있다. 이곳 당산제를 여자들만 참여하게 된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일제강점기 때에 중지되었다가 해방과 더불어 다시 모셨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15~16년 전에 중지되어 지금은 행하고 있지 않다.
2. 강정마을 당산제
김제시 황산동 소재 해발 134m의 황산 아래에 있는 강정마을 당산제로 해마다 음력 정월 보름날 밤 자시에 마을의 악역과 전염병 등을 예방하고 일 년 동안 마을 사람들의 안녕과 풍년을 소망하였다. 제사 비용은 농악대를 앞세우고 지신밟기를 하며 마을의 각 가정을 순회하면서 희사금을 받아 충당하였다. 제사에 참가하는 사람은 남녀가 같이 참석하며, 제주는 마을 이장이 맡는다.
3. 입석(立石) 당산제
김제시 월촌동 입석마을 당산제는 매년 음력 정월 보름날 밤 보름달이 뜰 무렵부터 신년을 맞이하여 마을 전체에 액운과 질병을 없게 하고 풍년이 들게 하며 일 년 동안 만사형통을 기원한다. 또한 마을 사람의 협동과 단결의 계기가 되게 하기 위해 실시해 오고 있다.
제비(祭費)와 제물은 구정 초부터 농악대를 앞세우고 마을 가가호호를 돌며 지신밟기를 하며 쌀 또는 돈을 거두어 제사비용으로 충당한다. 이곳 당산제는 마을 남녀 전체가 참여하는 것이 특징이며, 제주는 마을 이장이 맡는다. 이곳은 백제시대에 벽골제를 쌓고 동원 입구에 세웠다는 선돌이 있어 이 선돌에다 당산제를 지내왔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우리 문화를 말살시키기 위해 민속행사를 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이곳 당산제는 한 번도 결함이 없이 계속 이어왔다는 것이 특징이다.
당산제는 단헌(單獻), 유축(有祝)으로 하되 단헌으로 분향재배, 강신재배, 독축, 계반삽시(啓飯揷匙), 철시복반(撤匙復飯), 납주(納主), 철상(撤床) 등으로 끝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