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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344
한자 音樂
영어의미역 Music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서홍식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목소리나 악기를 소재로 박자·선율 등을 일정한 법칙과 형식으로 종합하여 사상과 감정을 나타내는 시간 예술.

[개설]

음악을 국악(國樂)과 양악(洋樂)으로 나누어 정리한 것은 우리 국악의 비중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흔히들 양악을 음악이라 부르고, 우리의 전통 민속 음악을 국악이라고 부르지만 국악 역시 우리 음악임은 엄연한 사실이다. 서양 음악은 신문화 발흥 이후 기독교의 전파와 함께 도입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18세기 고전파 음악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동안 교회를 중심으로 불렸던 찬송가를 비롯한 창가(唱歌)가 학교 음악으로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여기서는 한국음악협회 김제지부[현 한국음악협회 김제시지부] 발족 전후로 나누어 음악인들의 활동을 중심으로 김제 지역 음악을 정리한다.

[활동 내용]

1. 전성기

김제 지역의 음악 전성기는 1930~1950년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문필과 서화의 고향인 김제는 국악의 고장이기도 하다. 그런데 음악도 전라북도 지역에서 선각적인 역할을 한 곳이 바로 김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개화기에 접어들자 김제 지역 젊은이들은 어느 곳보다 먼저 선진 문명의 대열에 앞장섰다. 그래서 음악계에서도 1930년대부터 각 분야에서 개별적인 활동이 시작되었다.

이 무렵 오케 레코드 총판매부가 당시 김제읍 요촌리 3구 장흥상회[주인 황도희]에 설치되었다. 이는 김제 지역 음악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 것은 물론이고, 음악 인구의 저변 확대에도 큰 영향을 끼쳐서 그동안 개별적으로 음악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클럽을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자연스럽게 오케 레코드의 총판 사무실이 클럽 모임의 모체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1940년에는 11인조 관현악단이 발족되었는데, 군소재지에서 11인조 관현악단이 창단된 것은 실로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2. 광복 이후

1945년 8·15해방 후에 창립된 김제관현악단은 기악부 10인으로 구성되었으며, 이후 1948년 성악부 4인이 포함되었다. 1948년 K.M.C 악극단은 송달협을 비롯하여 황봉녀, 조남식, 이두환, 장철용, 이한묵 등 6인으로 구성된 성악부와 기악부 12인이 활동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악극단들은 1950년대 들어서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하여 불가피하게 해산되었다.

3. 1970년대 이후

1973년 10월 김제 지역에서 처음으로 열렸던 향토문화예술제의 차림새는 음악과 무용으로 꾸며져 있었다. 김제문화원에서 한국국악협회 김제지부 주관으로 열렸던 이 행사에서는 합창, 독창, 군무, 독무, 피아노 연주에서 낭독까지 곁들여지며 매우 다채롭고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1974년 12월 9일 지부장 곽기순, 부지부장 최성애, 상임간사 임방면, 사업간사 강윤철, 조직간사 정덕희, 감사 조성산으로 구성된 한국음악협회 김제지부가 창립되었다.

이후 한국음악협회 김제지부에서는 1975년 10월 두 번째로 열렸던 향토문화예술제에 처음으로 참여하여 김제중앙국민학교 강당에서 음악과 무용의 향연을 베풀었다. 이 행사에는 전국 관악제에 참가하여 입상을 하고 돌아온 죽산중학교와 죽산고등학교 취주악대도 참가하였다. 한국음악협회 김제지부에서는 1980년부터 1982년까지 음악과 무용 공연을 개최하였고, 1985년에는 음악제를, 1987년에는 김제예술제에서 음악 발표회를 주관하는 등 이후로도 김제시군 교사음악회, 송년음악회 등을 꾸준히 개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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