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2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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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倉敎會 |
영어의미역 | Daechang Church |
분야 | 종교/기독교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 234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용엽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에 있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소속 교회.
[개설]
전라북도 김제시 죽산면 대창리는 번드리라 불리기도 한다. 번드리는 드넓은 마을의 논에 물이 꽉 차면 멀리서 볼 때 번들번들하게 보였다 해서 생겨난 이름이며 대창리는 이곳이 큰 곡창 지대였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변천]
일찍이 전킨[한국명 전위렴] 전도사로부터 전도를 받고 입석리교회를 이끌던 이기선(李基先)으로부터 기독교를 전도 받은 죽산면 대창리의 이명순, 최학성, 최학삼, 최태산, 최윤증 등 5명이 1903년 4월 10일 최윤중의 집 4칸을 빌려 4일 기도회[목요일 밤 예배]를 시작하였다. 1906년에는 번드리의 임덕윤과 최학원 및 그 가족들에게 기독교를 전도하고 같은 마을 이춘선의 집을 매입하여 처음으로 예배당을 갖게 되었다. 1907년 군산에서 전주로 옮긴 젼킨 목사와 김필수 장로를 초빙하여 공동 회의를 열고 최학삼을 장로로 선출했으며 뒤를 이어 이재연, 최윤중, 최경윤, 최경택, 최태진 등 16명이 차례로 장로로 장립되었다.
1908년 3월에는 대창교회 출신인 최학삼이 남장로교회의 추천으로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된 후 대창교회에서 분립해 죽동교회를 세웠다. 이후 1922년 700원을 들여 132㎡ 규모의 예배당을 건립하는 한편 여학교를 세워 교장으로 최경택이, 교사로는 전주군 이동면 화산리의 김선애가 각각 취임하였다. 또한 1963년 4월 1일 새 예배당을 착공한 후 다음 해인 1964년 4월 30일에 완공하여 입당 예배를 보았다. 새 예배당의 본당은 중세 유럽풍의 장엄한 위용을 보여주는 독특한 건물이다.
[활동사항]
대창교회는 최학삼을 비롯하여 이재현, 정진철, 안경운, 안상영, 이병상 목사 등 약 18명에 이르는 많은 목회자를 배출한 교회이다. 이 중 최학삼과 윤식명 목사는 한국장로교회 초창기에 전국적으로 지명도가 높았던 목회자였으며 안덕윤 목사는 6·25 때 순교하여 한국 기독교사에도 그 이름이 잘 알려져 있다. 그리고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총회장을 지낸 바 있는 이리 신광교회의 고 안경운 목사는 현재까지도 위대한 목사로 추앙받고 있다.
한편 번드리 일대는 드넓은 벌판으로 농산물의 집산지였다. 번드리 서북쪽은 만경관내인데 구한말 매국노 이완용이 막대한 돈으로 이 동네 사람들을 동원해 바다를 둑으로 막아 거대한 농토로 만들었다. 그 이후로 이완용이 자기 농장을 보호하기 위해 기린봉에서 동진강과 수교천으로 흐르던 물을 보로 막아버리면서 비가 올 때마다 번드리 일대가 홍수 지대로 변해버렸지만 워낙 권력 있는 자라 아무도 이에 대항하지 못하였다.
이에 분개한 대창교회 설립자 중 한 명인 최학삼이 동네 사람들을 동원하여 함께 이완용이 막은 수교천 근방의 보를 터 버렸고 그 후로는 비가 많이 와도 번드리에는 홍수가 나지 않았다. 이 사건으로 이완용이 최학삼을 고발하여 2년에 걸친 재판이 이어졌으나 대구고법에서 최학삼이 승소함으로써 일단락되었다. 그 후 최학삼은 평양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었으며, 여학교를 세워 교육 사업에도 힘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