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270 |
---|---|
한자 | 黃璞旌閭 |
영어의미역 | Jeongryeo of Hwang Bak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38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진돈 |
성격 | 정려 |
---|---|
양식 | 우진각지붕 |
건립시기/일시 | 조선 후기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 381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용지면 구암리에 있는 조선 후기 충신 황박의 정려.
[개설]
황박(黃璞)의 본관은 우주(紆州), 호는 죽봉(竹峰)으로 문숙공 황거중(黃居中)의 후손이다. 황거중은 우주황씨(紆州黃氏)를 중흥시킨 인물로, 고려 말 우왕 때 이성계(李成桂)[1335~1408]와 남원 운봉 전투에서 아지발도(阿只拔都)를 무찌를 때 종사관으로 참전하여 개국 공신이 되었으며 정당문학에 발탁되었다.
충신 황박은 임진왜란 때 창의하여 조헌(趙憲)·고경명(高敬命) 등과 함께 웅치에서 적을 대파한 후, 권율(權慄)[1537~1599]과 함께 이현(梨峴)(지금은 이치로, 완주군 대둔산에서 금산으로 넘어가는 고개) 전투에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이에 김제시 용지면에 충신 황박 정려가 세워지고, 황박이 죽은 이치에는 충절비가 세워졌다고 전한다.
『김제향교지』 충훈 편을 보면 ‘문숙공거중후임난순절이치증병사명정충(文肅公居中后壬亂殉節梨峙贈兵使命旌忠)’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뜻은 “황박은 문숙공 거중의 후예로 임진왜란 시 이치전투에서 순절했고 증직으로 병사를 받았으며 충신으로 정려를 받았다”이다.
임진왜란 때 이치와 웅치에서 호남을 지킨 사람들은 대부분 전라도 사람들로서 이 중에서 김제 사람들만 약간 열거한다면 박충길·안징·박석정·이경주·박정영·박충일·유현무 등을 들 수 있다.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이 “만약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가 없었을 것이다[若無湖南是無國家]”라는 말을 하였는데, 이들의 장본인이 바로 민초이고 이름 없이 죽어 간 전라도 의병들인 것이다.
[위치]
용지면사무소에서 약간 못 가서 오른쪽으로 우주황씨 삼세사효정려(紆州黃氏三世四孝旌閭)가 있다. 그 왼쪽[서쪽]에 마을로 들어가는 사잇길이 있는데, 왼쪽이 충신 황박 정려이고 오른쪽이 황극형 정려(黃克亨旌閭)이다.
[변천]
충신 황박 정려는 조선 후기에 건립되었다. 1969년 2월 26일 중창하여 이건 상량식을 하였다.
[형태]
충신 황박 정려는 우진각지붕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 돌기둥과 돌기둥 사이에 홍살을 넣었고, 사람들의 접근을 막았다. 목조 기와로 된 정문 안에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정려각에는 기록을 적은 편액은 없고 ‘충신증가선대부병마절도사우주황박지려(忠臣贈嘉善大夫兵馬節度使紆州黃璞之閭)’라고 써 있는 편액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