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265 |
---|---|
한자 | 姜以文旌閭 |
영어의미역 | Jeongryeo of Gang Yimun |
이칭/별칭 | 효자 강이문 정려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382-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진돈 |
성격 | 정려 |
---|---|
양식 |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847년(헌종 13) 4월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382-1 |
문화재 지정번호 | 지정되지 않음 |
문화재 지정일 | 지정되지 않음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강이문의 정려.
[개설]
강이문(姜以文)의 본관은 진주(晉州)이고, 은열공(殷烈公) 강민첨(姜民瞻)의 후손이다. 3세 때 아버지가 돌아가자 매일 한스러움이 떠나지 않았고, 기일에는 통곡하며 음식을 전혀 먹지 않았다. 모친이 억지로 음식을 먹여 그를 기른 후 매일 새벽에 닭이 울면 묘를 살핀 지 40년이 되었다. 어머니가 병이 나자 어머니 변을 맛보아 병의 상태를 판단했으며 임종하려고 하자 손가락을 찧어 피를 수혈하여 목숨을 연장하였다. 상을 당해서는 예를 다했으며 여묘살이 3년을 충실히 수행하여 명정이 내려졌다.
[위치]
성덕면사무소에서 서쪽 길로 나와 약 700여m 가면 용안선 사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좌우의 길을 다 버리고 앞으로 쭉 뻗은 모산마을로 가는 길을 따라 약 1.45㎞쯤 가면 모산마을 못 미처 길 왼쪽, 성덕면 성덕리 382-1번지에 강이문 정려가 있다.
[변천]
연혁을 보면 숭정기원 후 4 상지 14년 정미[1847] 4월에 지현(知縣) 종인(宗人) 강진오가 글을 지었다[知縣宗人姜鎭午謹識]는 내용으로 보아, 1847년(헌종 13)에 정려각을 지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시멘트로 새로 기와를 이었다.
[형태]
강이문 정려는 팔작지붕 시멘트 기와집이며,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이다. 정려각은 돌기둥이 높아 기둥 밑이 썩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기둥과 기둥 사이는 홍살문으로 처리하였고 단청을 하지 않았다.
[현황]
정려 편액 우측에는 ‘효자학생강이문지려(孝子學生姜以文之閭)’라고 쓰여 있고, 좌측에는 정려를 내린 사연과 간지가 기록되어 있다. 강인준 정려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조선 후기 지금의 김제시 성덕면 성덕리 지역에는 진주강씨들이 대거 거주하고 있었다. 마을에 정려각이 있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학습의 효과를 제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