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25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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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全州李氏旌閭 |
영어의미역 | Jeongryeo of Virtuous Woman of Jeonju Yi Cla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186[요교길 145-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진돈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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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우진각지붕 |
건립시기/일시 | 1882년(고종 19) 10월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 186[요교길 145-1]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백산면 상정리에 있는 개항기 열녀 전주이씨의 정려.
[개설]
전주이씨(全州李氏)는 정존혁의 아내로 집이 가난하여도 길쌈을 밤낮으로 하여 시부모를 봉양하고 효성이 지극하였다. 시아버지가 죽은 후 3년간 머리도 빗지 않고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빠짐없이 공손히 하였다. 또한 남편 섬기기를 하늘 같이 하였는데, 남편 정존혁이 병으로 몸져눕자 더위와 추위를 가리지 않고 날마다 목욕재계하고 자기 몸으로 대신하기를 하늘에 빌었다.
어느 날 정존혁이 오리 고기를 원하였는데 갑자기 얻기가 어려워 정화수를 떠 놓고 하늘에 빌었다. 그러자 난데없이 오리 한 마리가 물동이 앞에 떨어져서 음식을 만들어 올렸더니 정존혁이 입맛을 얻어 병이 약간 좋아졌었다. 그러나 병이 중하여 위독하게 되자 전주이씨는 손가락을 찢어 피를 흘려 넣어 며칠 동안 목숨을 잇게 하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남편 정존혁이 세상을 떠나자 따라 죽으려고 하였으나, 시어머니가 있으므로 참고 견디며 시어머니 봉양에 힘썼다.
즉 전주이씨는 며느리로서 나아가 아내로서 직분을 다하였고, 시부모 공양을 위해 죽지 않고 일평생 봉양하여 정려를 받았다. 이에 자손들까지 세금과 일반 부역을 면제받은 것은 곧 전주이씨의 곧은 마음과 실천에서 나온 결과이다.
[위치]
백산면사무소에서 서흥농공단지를 거쳐 익산으로 가는 국도를 따라 가면 흥복사(興福寺)와 관망대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4.1㎞ 가면 상정사거리가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만경 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요교 가는 길인데, 오른쪽을 선택하여 350m 가면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왼쪽 자학동으로 가는 길을 따라 1.4㎞ 가면 요교마을이 나오는데, 열녀 전주이씨 정려는 요교마을에 위치한다.
[변천]
열녀 전주이씨 정려 편액을 보면 상지 19년 임오 10월에 명정(命旌)되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즉 1882년(고종 19) 10월 정려를 받았음을 알 수 있는데, 전주이씨의 효열의 행실이 관청에 알려져서 예조에서 정려를 세우도록 명하여 재목과 목수를 내려 주었으며, 그 자손에게 세금과 일반 부역을 면제하도록 하였다.
[형태]
열녀 전주이씨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로 홍살문을 둘렀고 지붕을 기와로 이었다. 집의 형태는 우진각이고, 처마는 겹처마가 아니고 홑처마이다. 정려 편액에는 ‘학생정존혁처열녀전주이씨지려 상지십구년임오십월명정(學生鄭存赫妻烈女全州李氏之閭上之十九年壬午十月命旌)’라고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