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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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韓仁烈旌閭 |
영어의미역 | Jeongryeo of Han Inyeol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313-3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진돈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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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석정려 |
건립시기/일시 | 1893년 |
정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 313-3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선암리에 있는 개항기 효자 한인열의 정려.
[개설]
한인열(韓仁烈)은 집안이 무척 가난하였으나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극진히 봉양하였다. 부모님이 몸져누워 약이 듣지 않을 때마다 자신이 대신 아프기를 하늘에 빌었는데, 어느 해인가 한겨울 눈 내리는 밤에 엎드려 빌며 날을 새우니 눈과 사람을 분간할 수 없었다고 한다. 또 어느 때는 손가락을 끊어 피를 드렸으나 상을 당하여 분묘에 가서 우니 피눈물이 풀을 적시었다. 시묘하다 눈이 쌓여 길을 알 수 없을 때에는 호랑이 발자국이 있어 길을 찾을 수 있었으며, 어두울 때도 호랑이가 앞장서서 길을 인도하니 하늘이 효심에 감동한 것이라고 사람들이 입을 모았다. 1893년(고종 30) 2월 10일에 명정되었다.
[위치]
금구면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삼성연수원 쪽으로 가다 첫 번째 오른쪽 길을 따라가면 나오는 축령마을 입구 바위 위에 한재갑·분성배씨 정려(韓在甲·盆城裵氏旌閭)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여기서 조금 더 가면 한국농촌공사에서 조성한 문화마을이 나오고, 싸리재를 넘으면 청도리 귀신사(歸信寺)와 연결이 된다.
[변천]
한인열 정려에 고종 계사 2월 10일에 명정했다는 내용이 써 있는 것으로 보아 1893년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원래는 돌로 뒤쪽의 담장을 쌓았으나 시대가 변하면서 시멘트로 담장과 바닥을 하였다.
[형태]
전형적인 석정려로, 주춧돌 위에 2개의 사각형 돌기둥을 세우고 석정판을 넣은 다음 갓석을 올렸다. 갓석은 팔작 기와지붕을 표현했지만, 기둥에 비하여 왜소하게 보인다. 석정려판을 넣을 때 기둥 윗부분을 잘라냈다.
[의의와 평가]
한인열 정려 옆에 한재갑·분성배씨 정려가 나란히 있어 이곳 축령마을이 청주한씨들의 세거지로서 씨족 활동이 활발했음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