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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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光斗旌閭 |
영어의미역 | Jeongryeo of Choe Gwangdu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 6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진돈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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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시멘트 기와 |
건립시기/일시 | 1869년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 62 |
소유자 | 전주최씨 종중 |
문화재 지정번호 | 지정되지 않음 |
문화재 지정일 | 지정되지 않음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광두의 정려.
[개설]
최광두(崔光斗)의 본관은 전주(全州)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최광두는 아버지가 병으로 눕자 여러 방면으로 약을 구하여 봉양하였으나 위급해지자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마시게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3일간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예를 다하여 장례를 치렀다. 또한 3년 동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정성껏 돌보았을 뿐만 아니라 상복을 벗고도 3년간이나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묘를 찾아가 돌보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유림과 지방관이 최광두의 효행을 왕에게 아뢰어 정려가 내려졌다.
[위치]
금구면 금구리 금구초등학교 담장에서 남쪽으로 약 30m 밑에 위치하고 있다.
[변천]
최광두 정려 편액을 살펴보면 상지 6년 기사 7월에 명정한 것으로 보아 1869년(고종 6)에 건립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정려각 중앙에 있는 비석은 불초자 가선대부 동지중추부사 전 오위장 최윤익(崔潤翼)이 세웠다.
[형태]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시멘트 기와지붕에 호박주춧돌을 사용하였다. 기둥과 창살에는 붉은색을 칠했고 대들보와 처마 부분은 오방색을 사용하여 단청을 하였다. 정려각 안에는 정려를 명한 편액과 월석으로 된 정려비가 세워져 있다. 비석에는 ‘유명조선효자증가선대부공조판서전주최공광두지려(有明朝鮮孝子贈嘉善大夫工曹判書全州崔公光斗之閭)’라고 새겨져 있으며, 글씨는 손자 출신인 최제화(崔齊華)가 예서로 썼다. 이 비석은 ‘숭정기원후사기사구월일’로 적혀 있어 1869년 가을에 건립했음을 알 수 있다.
[현황]
정려각을 보호하는 담장은 시멘트와 붉은 벽돌을 사용하였으며 들어가는 입구에는 가지가 둘로 갈라진 모과나무가 자라고 있다. 최광두 정려는 전주최씨 종중 소유로 금구면사무소에서 관리하고 있다. 김제시 금구면 금구리는 옛 금구현감이 자리한 지역이며 현재 금구향교가 위치한 마을이다. 최광두 정려는 금구향교에서 약 50m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마을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금구리 장교마을 온춘식 이장에 의하면 매년 정려각의 청결을 위하여 금구면사무소에서 제초 작업을 하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