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2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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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光岳旌閭 |
영어의미역 | Jeongryeo of Choe Gwangak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용지리 254-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진돈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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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맞배지붕 |
건립시기/일시 | 1854년(철종 5)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용지리 254-1 |
소유자 | 전주최씨 도사공파 문중 |
문화재 지정번호 | 지정되지 않음 |
문화재 지정일 | 지정되지 않음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용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광악의 정려.
[개설]
최광악(崔光岳)의 본관은 전주(全州), 호는 용와(龍窩)이다. 만육 최양(崔瀁)의 13세손이다. 최광악은 효심이 지극하여 아버지의 병이 위급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흘려 넣어 깨어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백 리 밖에 있을 때 어머님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밤길을 마다 않고 달려와 의원에게 약을 지어 회복하게 하였다.
그 뒤 부모가 돌아가자 예를 갖추어 장례를 치르고 무덤가에 움막을 짓고 3년 동안 정성껏 돌보았으며, 상복을 벗은 후에도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어김없이 성묘를 하였다. 이와 같은 효성을 지방 유림들이 왕에게 아뢰어 1854년(철종 6)에 동몽교관조봉대부(童蒙敎官朝奉大夫)에 증직되고 이름을 적은 기를 받았다. 최광악의 유고문집이 전한다.
[위치]
금구면사무소에서 김제시청 쪽으로 2.25㎞쯤 가면 오른쪽 교회 옆에 용사마을로 가는 길이 있다. 용사마을 입구에서 300m 더 가면 마을 가운데 창고가 있는데 그 앞에 최광악 정려가 있다.
[변천]
최광학 정려는 1854년 12월에 명정되었다. 정려각은 근래에 개와를 했으며 단청도 새롭게 했고 담장도 전부 보수하였다.
[형태]
정려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기와집으로 기둥과 편액에 모두 단청이 되어 있다. 양 옆의 풍판에는 태극 문양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특이한 점은 대부분 정려각 안을 홍살문으로 처리하는데 반해 이 정려각은 앞쪽에 문을 두 짝 달고 태극 문양을 넣은 것이라 할 수 있다.
[현황]
정려각 안에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효자증조봉대부동몽교관최광악지려(孝子贈朝奉大夫童蒙敎官崔光岳之閭)’라고 적혀 있다. 간지는 ‘상지오년갑인십이월일 명정’으로 적혀 있다. 전주최씨 도사공파 문중 소유로 후손 최병규가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전주최씨 도사공파들이 금구의 둔산마을에서 500년 동안 정착하면서 정려각을 잘 보존하고 있음은 조선시대에 충효열 정신이 얼마나 중요했던가를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최광악 정려는 앞쪽에 문을 2개 단 것이 특징으로, 옆 풍판에 태극문양을 넣은 것은 사료적 가치가 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