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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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應三旌閭 |
영어의미역 | Jeongryeo of Choe Eungsam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582[낙산3길 117-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김진돈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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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솟을대문 정려각 |
건립시기/일시 | 1797년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582[낙산3길 117-8] |
소유자 | 최남규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자 최응삼의 정려.
[개설]
최응삼(崔應三)의 자는 춘향, 호는 애일당으로, 아버지는 역시 효자로 정려를 받은 최식(崔湜)이다. 최응삼은 부모님의 생일과 연중 좋은 철이나 명절이 되면 동네 사람들과 각지의 선비들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 부모님을 위로하며 오래오래 살기를 빌었다. 행여나 부모님이 병을 걸리면 겨울에도 죽순과 잉어를 구해다 드리는 등 정성을 다했다.
이처럼 부모님을 즐겁게 하는 일에 마음과 물질을 아끼지 않는다는 소문에 당시 대제학을 지내던 소세양(蘇世讓)이 지나다 방문하여 여러 선비들과 글을 짓고 흥겹게 놀았다. 그 후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6년 동안 무덤 옆에 움막을 짓고 정성껏 돌보았는데, 이와 같은 효행이 알려져 조정에서 정문을 세우게 하고 쌍계사에 아버지 최식과 함께 모시도록 하였다.
[위치]
김제에서 이서를 거쳐 전주 가는 방향으로 약 11.4㎞ 가면 애통리에 있는 사거리검문소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길을 따라 남쪽 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약 450m 가면 두 갈래 길이 나오는데, 오른쪽은 분토마을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둔산[일명 서둔]으로 가는 길이다. 왼쪽 길로 접어들어 약 2.1㎞ 가면 전주최씨 집성촌인 서둔산마을이 나온다. 최응삼 정려는 서둔산마을 가운데에 있는 최남규의 집 앞에 위치한다. 정문 옆으로 자그만 산이 이어져 있는데, 여기에 옛날 당산나무로 사용했던 노송이 자라고 있다.
[변천]
정려 편액의 간지에 있는 ‘상지이십일년정사월일개립(上之二十一年丁巳月日改立)’이라는 내용으로 보아 1797년(정조 21)에 새롭게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처음 만들 때는 주춧돌을 놓고 정려각을 지었으나 일제강점기에 계단을 시멘트로 바른 흔적이 보인다.
[형태]
정면 3칸, 측면 1칸을 만들어 사면을 홍살로 둘렀다. 솟을대문 정려각 중앙에는 최식의 정려가 있고, 왼쪽에는 애일당 최응삼(崔應三), 오른쪽에는 학은재(學隱齋) 최화(崔和)의 정려를 모시고 있다. 최석헌(崔錫憲)이 최응삼 정려 옆에 ‘애일당’이란 편액을 만들어 붙여 놓았고, 최화 정려 옆에는 ‘학은재’라는 편액을 써서 붙였다.
[의의와 평가]
전주최씨 도사공파들이 김제 금구 지역에 살면서 효자와 열녀를 많이 배출하여 지역 교화에 크게 이바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대제학이던 소세양이 방문하여 시를 지었다는 것은 당시 산동리가 김제 지역에서 선비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