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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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世孝門 |
영어의미역 | Jeongryeo of Filial Duty of Naju Na Cla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 산78-1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진돈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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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906년(고종 43) 10월 15일 |
정면칸수 | 2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 산78-1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하동에 있는 개항기 나주나씨 효자 8명의 정려.
[개설]
나주나씨 효자 8명인 나익열·나승열·나희순·나처의·나형열·나처인·나처일·나처대(羅處大)는 지극한 효성과 우애로 나라로부터 정문(旌門)을 받았다. 특히 나형열은 부모상을 당하여 3년 동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돌보는데 호랑이가 옆에서 지켜 주었으며, 이웃 마을 사람들이 물과 땔나무를 날라다 줄 정도로 효성이 지극하였다.
나승열은 이조판서 나득강(羅得康)의 후손으로 효도가 독실하고 학문을 부지런히 하며 검소하였다. 동생 나익열과 함께 시묘살이를 하였다. 나처인의 호는 지음재로, 효도로써 도가 있어 고종 때 명정(命旌)하였다. 나처의의 호는 묵은으로 나처인의 동생이다. 나처일의 호는 지봉으로 나처인의 동생인데, 부모상을 당하여 시묘살이를 하였다.
『김제향교지』에 나처인·나처의·나처일은 형제지간으로 우애가 돈독하고 효를 몸소 실천하였으며, 나형열과 나승열도 형제간으로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는 등 효행이 뛰어나 정려를 내리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위치]
서흥동사무소에서 나와 전라북도 익산으로 가는 길을 따라 350여 m쯤 가면 덕암학원이 나온다. 덕암학원 뒤에서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450m쯤 더 가면 지음마을로 가는 길이 나오는데, 여기서 왼쪽으로 400여 m 더 가면 지음마을이다. 마을 뒤 산자락을 타고 남쪽을 향해 400m쯤 걸어가면 정려문이 서 있는데, 세효문으로 들어가는 길이 나 있지 않아 숲 속을 헤치고 들어가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변천]
1906년(고종 43) 10월 15일 나익열·나승열·나희순·나처의·나형열·나처인·나처일·나처대 등 8명 모두 효자로 정려를 받았다.
[형태]
정려각은 팔작지붕 겹처마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홍살이 있다. 세효문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규모로 네 추녀 끝에 받침대를 세워 보주를 강화해 추녀 끝을 안정시켰다. 정려각 안에는 편액과 정려기가 기록되어 있는데, ‘효자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동경연참찬관나처인지려’, ‘효자증통정대부호조참의나처의지려’, ‘효자학생나형열지려’, ‘효자증통정대부비서감승나익열지문’, ‘효자학생나승열지문’, ‘효자학생나희후지문’, ‘효자학생나처일지려’, ‘효자통정대부첨지중추부사나처대지려’라 써있으며, 김경규가 글을 지은 ‘나공형제정려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