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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601218
한자 趙亢晋旌閭
영어의미역 Jeongryeo of Jo Hangjin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 350-5[동서2길 13]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김진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정려
양식 맞배지붕
건립시기/일시 1892년(고종 29)연표보기
소재지 주소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 350-5[동서2길 13]지도보기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옥산동에 있는 효자 조항진의 정려.

[개설]

조항진(趙亢晋)의 본관은 김제이고, 자는 후재(厚齋)이며, 호는 눌헌(訥軒)이다. 어려서부터 학문이 깊고 효성이 지극했던 조항진은 부친상을 당하여 3년 동안 무덤 곁에 움막을 짓고 정성껏 돌보았다. 상복을 벗고 나서도 다시 3년 동안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거르지 않고 산소를 찾아 제사를 극진히 모셔 1892년(고종 29) 11월에 정려(旌閭)를 받았다.

[위치]

김제시 옥산동 옥산사거리에서 김제중앙병원 중간 지점인 동성주유소 뒤편, 즉 오른쪽에는 이화장 여관이 있고 그 왼쪽으로 난 샛길을 따라가면 옥거리에 조항진 정려가 있다. 정려 오른쪽에는 조간유허비(趙簡遺墟碑)가 나란히 서 있다.

[형태]

조항진 정려는 맞배지붕 기와집에 홑처마를 하고 있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홍살이 있다. 비각 안에는 비석이 있다.

[현황]

비석 전면에 예서로 ‘효자조항진지려(孝子趙亢晋之閭)’라고 새겨져 있으며, 정려 편액은 없다. 바로 옆에는 ‘고려우정승문량공열헌선생조간유허비(高麗右政丞文良公悅軒先生趙簡遺墟碑)’라고 쓴 비석이 있다. 이곳에는 여러 사람들의 시가 쓰인 편액이 있으며, 토방에는 훌륭한 자식을 낳기 위하여 돌에 구멍을 파서 먹은 흔적이 많다.

[의의와 평가]

조항진은 학문을 좋아했고 부모를 섬김에 정성을 다하였다. 상을 당해서는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했고, 상을 마치고도 초하루와 보름에는 빠트리지 않고 묘소를 찾았다. 조항진은 옮은 일을 반복해서 몸소 실천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시종일관 부모에 대한 효심이 변하지 않았고, 죽을 때까지 섬기는 마음이 한결같았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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