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2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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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德業旌閭 |
영어의미역 | Jeongryeo of Gim Deokup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갈공동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김진돈 |
성격 | 정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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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우진각지붕 |
건립시기/일시 | 1889년(고종 26) |
정면칸수 | 1칸 |
측면칸수 | 1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갈공동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갈공동 갈공마을에 있는 효자 김덕업의 정려.
[개설]
김덕업(金德業)은 나이 열 살이 채 못 되어 어머니를 병환으로 여의고 아버지와 둘이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마저 병석에 눕자 아버지의 병간호에 정성을 다하였다. 좋다는 약은 어떻게라도 구해 드렸으나 아버지의 병세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노인이 나타나 선약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어 세찬 눈보라를 헤치고 간신히 구해다가 드리니, 하늘의 도우심인지 사경을 헤매던 아버지의 병세가 차츰 회복되기 시작했다.
김덕업이 전주감영의 이역(吏役)으로 있을 때였다. 밤마다 먼 곳 전주에서 아버지를 모시고자 집으로 오는데 그 때마다 길 앞에 알 수 없는 불빛이 켜져 아주 밝았고, 호랑이가 나타나 그를 등에 업고 뛰어 눈 깜짝할 사이에 집에 다다를 수 있었다. 주위 사람들은 이런 일이 아버지를 위한 지극한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일어나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김덕업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조정에서는 1889년(고종 26) 정려(旌閭)를 세우게 하였고, 통정대부를 제수하였으며, 정려 안에 호랑이를 만들어 놓았다고 전한다.
[위치]
김제시 교동월촌동주민센터에서 나와 성산로를 따라 김제시청 쪽으로 약 900여m 가면 오른쪽은 김제시청으로 가는 길이고, 왼쪽은 만경으로 가는 길이다. 만경 가는 길로 들어서서 약 150m쯤 더 가면 왼쪽 언덕에 백석사 입구라는 표지석이 있다. 이 비탈길을 따라 오르면 시멘트 포장을 한 좁은 길이 서쪽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약 350m쯤 가면 왼쪽에 소나무가 우거진 밭이 있고, 그 사이로 길이 나 있다. 그 길로 100m쯤 가면 다시 산자락 오른쪽으로 길이 나 있는데, 그 길로 50m쯤 더 가면 금령김씨 현동 재실 입구에 김덕업 정려가 자리하고 있다.
[형태]
김덕업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우진각지붕 시멘트 4각 기둥을 사용하였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철장을 둘렀다.
[현황]
김덕업 정려 안에는 ‘효자통정대부김덕업지려(孝子通政大夫金德業之閭)’라는 예서 편액이 있고, 그 바로 밑에 정려기가 있다. 중앙에는 월석으로 된 정려 비석이 있으며, 옆에 호랑이가 조각되어 있다. 이 호랑이는 김덕업이 전주감영의 이역으로 있을 때 밤마다 등에 업고 집까지 데려다 준 호랑이를 상징하는 것이다.
[의의와 평가]
『김제·금구·만경향교지』의 정려효행편의 효자 김덕업 부분에 호랑이가 데려다준 이야기가 나와 있는데, 사람들은 이런 특이한 사건이 일어나는 것은 동물의 영장인 호랑이가 효자를 알아보고 행동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현대에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옛날에는 이러한 일이 비일비재하여 효자는 하늘이 알고 호랑이도 움직였던 인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