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19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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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山書院 |
영어음역 | Namsan Seowon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산64-2[만경로 600-9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이용엽 |
성격 | 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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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시기/일시 | 1574년(선조 7) |
정면칸수 | 3칸 |
측면칸수 | 2칸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산64-2[만경로 600-92]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에 있는 조선 전기 서원.
[개설]
남산서원(南山書院)에서는 병자호란 당시 척화파였던 유지화(柳志和)[1599~1680]를 중심으로 동강 남궁제(南宮濟)를 제향하고 있다. 유지화는 1633년(인조 11) 효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제수되었으며,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근친하는 일로 귀향하였다가, 병자호란을 당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산성에 호종하고 척화론을 주장하였다.
이어 통진현감·회덕현감 등에 제수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 뒤 계모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반구당’이라는 편액을 걸고 명류들과 경전을 토론하며 만년을 지냈다. 1680년(숙종 6) 호종공신에 추록되고 통정대부에 승서(陞敍)되었으나 조정의 명이 하달되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효자의 정문이 세워졌다.
[위치]
남산서원은 전라북도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산 64-2번지[만경로 600-92]에 있다. 국도 29호선을 따라가다 보면 남산서원이라는 표지가 보이는데 그 구릉의 끝 부분에 위치하고 있으며, 상당히 넓은 부분이 잔디와 남산서원의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변천]
남산서원은 1574년(선조 7)에 창건, 1870년(고종 7)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70년 이 지역 유림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반구당 유지화의 위패를 모셨으며, 순조 때 동강 남궁제를 추가 배향하였다.
[형태]
경내의 건물로는 3칸 사우인 경의사(景義祠), 산문인 경의문(景義門)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경의사 중앙에는 유지화와 남궁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현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