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1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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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八孝祠 |
영어의미역 | Palhyosa Shrine |
분야 |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 508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용엽 |
성격 | 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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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 | 사당 맞배지붕|강당 팔작지붕 |
건립시기/일시 | 1629년(인조 7) |
정면칸수 | 3칸[사당]|4칸[강당] |
측면칸수 | 4칸[사당]|3칸[강당] |
소재지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 508 |
소유자 | 나주나씨 종중 |
[정의]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에 있는 조선 후기 나주나씨 가문의 사당.
[개설]
나주나씨(羅州羅氏)는 문중 3세대에 걸쳐 8명의 효자가 나왔다. 팔효사(八孝祠) 안에 있는 은행나무는 팔효사의 주벽 나안세(羅安世)의 부친 나보증이 어려서 심었다 하며, 나씨 문중에서 장원 급제 등 경사가 있을 때 이 은행나무에 큰 북을 달아놓고 쳤다고 한다. 또한 팔효자가 날 때는 잎만 피고 3년이 지난 뒤에야 열매를 맺었다 하여 유명해졌다.
배향인물 나안세의 호는 건계(建溪), 문과 갑과(甲科)에 급제하여 교리를 역임하고 효행과 학행으로 정려를 세웠다. 나안의(羅安義)의 호는 낙선(樂善)으로 증직되어 ‘집의’를 제수받았고 정려를 세웠다. 나안인(羅安仁)의 호는 내빈(耐貧)이다. 경능참봉에 정려를 세웠다. 나응허(羅應虛)는 나안세의 아들로 호는 행정, 행청주목 판관으로 정려를 세웠다. 나응삼(羅應參) 또한 나안세의 아들로 임금이 내려준 사호(賜號)는 구산(龜山)이다.
사재(事載) 어승(御昇) 육일록(六逸錄)에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나의(羅儀)의 호는 행은(杏隱), 행경릉참봉으로 정려를 세웠다. 나표의 호는 절효(節孝), 참봉으로 정려를 세웠다. 나계의 호는 월봉으로 봉사에 제수되고 정려를 세웠다. 나한명(羅漢明)의 호는 영이당(永怡堂)으로 정려를 세웠다.
[위치]
팔효사는 전라북도 김제시 신풍동 508번지에 위치해 있다.
[변천]
팔효사는 1629년(인조 7)에 세워진 것으로 나주나씨 가문 출신의 8명의 효성을 빛내고 가르침을 주기 위해 세웠으나,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철거되었다. 그 후 1965년 중건되었다.
[형태]
팔효사는 앞면 3칸, 옆면 4칸, 맞배지붕의 사당 건물과 앞면 4칸, 옆면 3칸, 팔작지붕의 강당이 있다. 팔효사 안에 있는 은행나무는 나이가 500여 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6m, 둘레 3.65m로 시멘트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다.
[현황]
팔효사에는 현재 3대에 걸친 9명의 효자를 배향하고 있어, 나중에 1명이 추가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