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6009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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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漢永 |
영어음역 | Bak Hanyeong |
이칭/별칭 | 한영(漢永),정호(鼎鎬),영호(映湖),석전(石顚) |
분야 | 종교/불교,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종교인 |
지역 | 전라북도 김제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채수환 |
[정의]
개항기와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완주 출신의 승려이자 불교 지도자.
[개설]
박한영(朴漢永)의 본명은 정호(鼎鎬), 호는 석전(石顚)이며, 후일 당호(堂號)를 영호(映瑚)라 하였다. 한영(漢永)은 자(子)이다. 1870년 전라북도 완주에서 태어났지만 주로 전주, 김제 등에서 활동하였다.
[활동사항]
박한영은 어머니가 위봉사(威鳳寺)에서 들고 온 생사법문(生死法門)에 감명을 받아 출가를 결심하였다. 19세에 전주 태조암(太祖庵)으로 출가하여 금산(錦山)의 제자가 되었고, 21세에 백양사의 환응(幻應)에게 4교(四敎)를 배웠다. 이후 선암사의 경운(敬雲)에게 대교(大敎)를 전수 받았으며, 구암사(龜巖寺)에서 처명(處明)의 법(法)을 이어 받았다.
27세가 되던 해인 1896년 박한영은 대원사, 금산사, 해인사, 법주사. 화엄사, 범어사 등 전국 유수의 사찰마다 그의 법음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로 한국 불교계의 사상적 지도자가 되었다. 당시 그를 따르는 학인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1908년 박한영은 쇠퇴한 불교를 혁신하려는 뜻을 품고 교단의 유신(維新)에 힘을 기울였으며, 1911년에는 해인사 주지 이회광(李晦光)이 일본 조동종(曹洞宗)과 우리나라 불교와의 연합을 꾀하였을 때 한용운(韓龍雲)·오성월(吳惺月)·진응(震應)·금봉(錦峯) 등과 함께 임제종(臨濟宗)의 전통론을 내세워 연합 조약을 무효화시켰다. 1913년에는 『해동불교(海東佛敎)』를 창간하여 불교의 유신을 주장하고 불교인의 자각을 촉구하였다.
1914년에는 고등불교강숙(高等佛敎講塾), 1916년에는 불교중앙학림(佛敎中央學林)의 강사가 되었으며, 1926년에는 서울 안암동 개운사(開運寺)에 강원을 개설하여 불교계의 영재들을 배출하였다. 1929년 조선불교 교정(敎正)에 취임하여 불교계를 지도하였고, 1931년에는 불교전문학교[동국대학교 전신] 교장으로 선임되었다. 8·15해방 이후 조선불교중앙총무위원회 제1대 교정으로 선출되어 불교계를 이끌다가 1948년 내장사에서 입적하였다. 금봉·진응과 함께 근대 불교사의 3대 강백(講伯)으로 추앙받았다.
박한영이 주장한 불교 개혁 이론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위선의 계율에 농락하지 말고 계율을 확립해야 한다. 둘째, 이타공덕(利他功德), 즉 이롭게 하는 일과 공공의 덕을 쌓도록 한다. 셋째, 고루한 훈화에만 힘을 쓰지 말고 학교를 일으켜 지식을 보급하고 영재를 배출해야 한다. 넷째, 이름뿐인 포교를 지양하고 성심으로 포도해야 한다. 다섯째, 신도가 가져다주는 것을 바라며 생활하지 말고 사업을 일으켜 스스로 가람의 유지책을 강구해야 한다. 여섯째, 백성들에 대한 자선사업, 즉 병원 등을 설립하고 빈민 구제 등을 실천하여 말로만의 구세제민(救世濟民)이라는 비웃음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박한영은 특히 불교의 사회 참여와 불교의 존엄성, 그리고 보호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고식적인 한국 불교와 퇴폐한 민족 종교에 새로운 활력을 주입하고 불교의 귀의와 지존의 사상으로 민중을 교화하며 제도 중생하려면 모든 승려는 그에 흡족한 지식과 덕망과 경륜과 사상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저술 및 작품]
편저로 『정선치문집설(精選緇門集設)』과 불교 사상 관련한 수백 편의 논설이 있으며, 시와 서예에도 능하여 『석전시초(石顚詩抄)』·『석림수필(石林隨筆)』·『석림초(石林抄)』 등을 남겼다.
박한영은 「불교 전체와 비구일중(比丘一衆)」이라는 『해동불보』6호 논설에서 불(佛)·법(法)·승(僧) 3보(三寶)와 비구가 지녀야 할 정신 자세를 다음과 같이 논하였다. 불이란 불시(拂施)로서 각자(覺者)란 뜻이다. 각이란 마음과 사람의 두 가지 면에서 요약할 수 있으며 각각 다른 뜻이 있다. 마음으로 요약하면 원래 중생심의 당체, 즉 청정한 보구가 각이다.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에 말하기를 ‘소위 일체법(一切法)이 진여(眞如) 평등하여 증감하지 않는 까닭이며, 일체 보살이 모두 이 법을 타고 여래지에 도달하는 까닭이다.’라고 하였다. 즉 “각자란 생사의 대응을 영원히 깨달은 까닭이며, 스스로 깨닫고 남을 깨닫게 하며 깨달음과 행함이 원만함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조사어록(祖師語錄)』에 말하기를 “한 승이 임제(臨濟)에게 묻기를 진불(眞佛), 진법(眞法), 진도(眞道)가 무엇입니까?” 하자 임제가 대답하기를 “마음이 청정(淸淨)한 것이 불(佛)이요, 마음의 광명(光明)이 법(法)이요, 곳곳에 막힘이 없는 정광(淨光)이 도(道)라 하셨음이 바로 그 뜻을 말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